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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은 남편 목사와 성도 더 섬기게 한 하나님 학교

김미경 기자 입력 2026.09.07 14:05 수정 2026.09.07 14:05

복음을 살아낸 사람들 ⑤ - 김영희 사모(경주 강동교회) (1)

개척교회 품고 시작한 포도밭의 여정
농사 경험 없이 마주한 현실의 벽 고난
찬양·기도로 밭 가꾸며 주님 뜻 새겨
샤인 폭락 속 머루포도로 일군 은혜

김명희 사모가 환한 미소를 띄고 있다.
김명희 사모가 환한 미소를 띄고 있다.
강동교회 전경
강동교회 전경
2000년 3월 22일, 경주 강동면 한 임대아파트 곁에서 작은 교회 하나가 첫 예배를 드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경동노회 전도부의 주관으로 개척된 강동교회였다.


교회 주변에는 백 년이 넘은 교회 두 곳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고, 인근에는 불교계 학교인 위덕대학교가 있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결코 만만한 개척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목회자 부부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교회였다.
개척예배를 드리던 날, 경동노회 사모합창단의 특송이 예배당을 울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교회였지만, 사모의 눈에서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맡겨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하지만 감격적인 시작 뒤에는 현실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인 한 명, 그리고 세 아이
개척 초기 교인은 사실상 없었다. 목회자 부부와 세 자녀, 그리고 인근 아파트 주민인 남자 성도 한 명이 예배를 드렸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믿음만으로 버티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웠다. 생활비와 교회 운영비를 걱정해야 했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목회자 가정에도 고스란히 찾아왔다.

한때 선배 목회자의 권유로 택배 일을 해보려 했지만 사기를 당했다. 카드론으로 빌린 큰돈을 갚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경제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정말 힘들었어요. 속병이 날 정도였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목회를 이어갔다. 교회가 성장하기를 기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도에 힘썼했다.사모 역시 교회 부흥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당시 자신의 열심에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개척 초기에는 아이들을 팽개치고 전도만 열심히 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면 된다는 잘못된 신념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주님 앞에 걸림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자신을 전혀 다른 자리로 이끄실 것이라는 사실을.

“목회자가 농사를 짓는다고요?”
전환점은 코로나19였다. 예배가 줄었다. 오후예배와 아동부예배, 새벽예배 등이 축소되면서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사모에게는 그 시간이 오히려 불편했다.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그 무렵 목사는 교회의 재정적 부담을 덜고 조기 은퇴를 준비하기 위해 농사를 지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사모는 반대했다.

“사실 제 마음은 농사를 반대하고 있었어요. 목회자가 하나님께 서원했으니 오직 목회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 그것이 사모가 붙들고 있던 믿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모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길을 열어가고 계셨다.

처음 마주한 포도밭
이웃 교회 장로 부부의 도움으로 밭을 임대하게 됐다. 원래 그 장로가 농사를 짓던 밭이었지만 갑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지면서 농사를 이어가기 어려워졌고, 그 밭을 부부가 맡게 됐다. 장로 부부는 농사 방법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처음 밭에 들어선 사모의 마음은 복잡했다.
‘우리가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밭의 풍경이 싫지 않았다.

“처음 밭을 둘러보는데 흙냄새가 좋았어요. 포도나무들도 예뻐 보였고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게 돼서 설레기도 했지만,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렇게 목회자의 아내는 초보 농부가 됐다.

포도밭에 포도가 주렁주렁 아름답게 열려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주렁주렁 아름답게 열려있다.

“농사는 하늘을 더 많이 바라보는 일이었어요”
포도 농사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농사 경험도 없었고 제대로 갖춰진 장비도 없었다. 노하우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몸으로 때우다시피 했어요.”
집에서 밭까지는 차로 약 50분. 밭에 도착하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특히 6~7월은 포도 농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다. 그때 해야 할 일을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하다 한 해에는 더위를 먹어 생명이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은 조금씩 적응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 사모의 신앙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특히 농사는 하늘을 더 많이 바라보는 일이더라고요.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포도가 맛있게 익어주기를 기도했다. 자신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밭에 갈 때마다 찬양을 틀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바라보았다.
싹이 돋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었다. 어느새 작은 포도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초록빛이던 포도알에 어느 순간 연보라색이 한두 알씩 스며들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심을 느꼈어요. 초록 포도에 연보라 빛이 들어오고, 조금씩 보라빛 포도송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아직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샤인머스캣에서 머루포도로
농사를 시작한 뒤 품종에도 변화가 생겼다. 샤인머스캣에서 머루포도로 품종을 바꾸게 된 것이다.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다. 이웃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그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난해 샤인머스캣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농사가 잘되지 않은 데다 가격까지 낮아 농사 비용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샤인이 가격이 없어 내다 버릴 지경이었어요. 농사 비용도 못 건질 위기였죠.”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처음 농사지은 머루포도가 예상 밖으로 잘됐다. 판매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사모는 그것을 단순한 농사의 성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상상도 못 했고 전혀 계획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목회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모에게 포도밭이라는 새로운 자리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모는 아직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포도밭이 단순히 교회의 재정을 돕기 위한 일터가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다시 세우고 남편과 성도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하나님의 학교가 될 줄은.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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