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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죄를 지었능교?" - 이현두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9.07 14:31 수정 2026.09.07 14:31

목회일기

이현두 목사
합천유천교회

이현두 목사
이현두 목사
할머니가 우리 교회에 나오신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어 간다. 작년 어느 주일 아침, 승합차를 몰고 가다가 집 안에서 길가에 서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허리가 활처럼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서 계셨다. “할매, 교회 가입시더. 차 타이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열었다. 싫다고 손사래를 칠 줄 알았는데, 마치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신 듯 순순히 올라타셨다.

잠시 뒤 자랑스럽다는 듯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도 서울 목동에서 교회 다니뉘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과 며느리는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교회나 성당이나 그저 ‘예수 믿는데’였다. 그 생각이 마음 문을 조금 열어 놓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근동 댁’이라 불린다. 의령군 유곡면 세간마을에서 시집을 오셨다. 할아버지의 본처가 아이 셋을 남기고 낙동강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뒤 새로 맞은 아내였다. 그리고 시집와서 또 자녀를 몇 명 출산하셨다. 가난한 시절, 자식들은 초등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고물을 모았다. 그 일이 성공하여 지금은 목동단지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고물상도 크게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파트 생활이 “징역 사는 것 같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올해 아흔두 살, 한글은 읽지 못한다. 구순열(언청이)이라 웃을 때면 윗입술의 흔적을 손으로 가리신다. 허리는 땅을 향해 깊이 굽었고, 마을 길을 걸을 때는 유모차나 지팡이를 의지한다. 그래도 하루는 부지런하다. 마당에는 가지와 고추, 땅콩과 들깨, 옥수수와 파가 빼곡하다. 아흔두 살 할머니는 오늘도 물조리개를 들고 그 작은 생명들에게 물을 주신다.

교회는 집에서 엎어지면 코앞이지만 오르막 언덕 위에 있다. 넘어질까 염려되어 주일마다 차로 모시러 간다. 승합차가 대문 앞에 서면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건 강아지 복슬이다. 자동차 소리만 들리면 꼬리가 헬리콥터 날개처럼 흔들며 마당을 빙글빙글 돈다. 우리 교회는 부임이후 16번의 이미용과 침술 봉사, 일 년에 두세 번씩 마을 잔치, 수시로 마을회관에 음식을 대접해 왔다. 그 작은 섬김들이 씨앗처럼 싹을 틔운 것일까? 할머니는 그렇게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진 집사님은 할머니의 낡은 집이 마음에 걸렸다. 교회 나오시는 것이 너무 고마워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전기선도 다시 잇고, LED를 달며 사비로 재능 기부를 했다. 십여 년 전 낙동강 둑이 터져 물에 잠겼던 집이었다. 벽지가 너덜너덜했지만, 할머니는 늘 “인자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시며 하루하루를 견디셨다. 집이 새 옷을 입자 숨이 다시 쉬는 것 같았다. 아내도 서랍장을 사서 부엌살림을 정리해 드렸다.

진 집사님의 눈에는 재래식 변소가 들어왔다. 폭염 속 아흔두 살 노인이 높은 축담을 오가며 아래채에 있는 변소를 써야 한다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재비만 대이소. 화장실은 내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더” 했다. 부엌 앞에 벽돌을 쌓고 굴착기를 불러 정화조를 묻고, 세면장과 수세식 화장실, 세탁기 자리까지 마련했다. 일꾼과 함께 일주일이 넘도록 땀을 쏟았다.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꽂혀도 망치 소리와 배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마당에 콘크리트까지 깔았다.

마을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할매, 교회 취직 잘했네.” “절대로 교회 안 나가면 안 돼요.”
할머니도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며칠 뒤부터 고구마 순 한 줌, 깻잎 한 봉지, 쪽파 몇 단이 사택 문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아흔두 살 노인의 작은 밭에서 나온 감사였다.

이제 문제는 세례였다. 한글을 모르니 성경도, 찬송 가사도 읽을 수 없다. 그런데 찬송이 시작되면 할머니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박자도 모른다. 그런데 작은 손을 살짝살짝 마주치며 몸을 좌우로 이쪽으로 살짝, 저쪽으로 살짝 리듬에 맞추며 흔드신다. 글자는 몰라도 영혼이 찬송에 반응한다.

가을 세례를 위해 주일 오후마다 학습·세례 문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느 주일 오후, 나는 쉽게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손가락으로 한 사람씩 가리키며 “저도 죄인입니다.” “권사님도 죄인입니다.” “집사님도 죄인입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죄인입니다.” 그 순간 할머니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나 죄 안 지었다.” “내가 무슨 죄인이고?”.

성도들의 얼굴이 무너졌다. 웃음이 터졌다. “와하하!”.손뼉을 치고 허리를 잡고 포복절도를 하며 웃었다. 할머니는 더 억울해졌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능교? 나 남의 거 훔친 적도 없고, 나쁜 짓 한 번 안 하고 살았니더. 나 죄 없니오.”

웃다가 웃다가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 할머니에게 죄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 사람을 때리는 것, 몹쓸 짓을 하는 것이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아흔두 살 할머니에게 “죄인입니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억울하셨겠는가? 그 질문이 웃음으로 시작돼 내 가슴 깊숙이 박혔다. 사실 죄에 대해서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넘게 설교했다.

도배는 사람이 할 수 있다. 장판도, 전기선도, 화장실도 지어 줄 수 있다. 굽은 허리를 부축해 교회까지 모셔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영혼의 눈을 열어 하나님 앞에 선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일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었다. 벽지는 새것으로 바꿀 수 있어도 마음의 벽지는 갈아 줄 수 없었다. 어두운 방에 LED는 달아 드릴 수 있어도 영혼 속에 빛을 밝히는 일은 우리의 전깃줄로 할 수 없었다. 그 일은 성령님께서 하셔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할머니를 태우러 간다. 승합차가 서면 복슬이가 먼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온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나오신다. “할매, 교회 갑시더.”
할머니는 말없이 차에 올라타시고, 찬송이 시작되면 글자 하나 읽지 못하면서도 몸을 살며시 좌우로 흔드신다.

안수 기도를 해 드린다. 나는 기다린다. 언젠가 그 입술에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능교?” 대신 “주님, 제가 죄인입니더.”라는 고백이 나오는 날을…. 아흔두 해 동안 굽어 온 허리를 사람이 펴 드릴 수는 없어도, 한 영혼이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그날만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것을 믿으며 기다린다.

목회란 어쩌면 그런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우리가 하지만, 그 영혼을 주님께로 돌이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늘도 나는 그 일을 성령님께 맡긴다.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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