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삶을 이끈다. 삶은 역사를 수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수놓인 역사는 후세 사람들에게 길이 남아 삶의 이정표가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 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한 걸음 더 깊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때로는 원하지 않았던 길을 걸어야 할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뜻의 궁극적 목적이 단지 이 땅에서 잘사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능력이 아니다. 학벌도 아니다. 재물도 아니다. 명예도 아니다. 오직 ‘순종’뿐이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약속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가치를 바로 알기 때문에 내 목숨 하나쯤은 초개와 같이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에게 마지막 남아야 할 말은 ‘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다 알지 못해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신앙의 필수사항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변화시키실 때마다 사람을 사용하셨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부르셨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었을지라도 그는 순종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사용하셨다. 모세는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말씀을 따랐다. 에스더는 자신이 왕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에스더는 결단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신앙의 원리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는 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 자리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서 나를 무엇에 사용하려고 하시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사 55:8)“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이성만으로 재단하려 할 때 순종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게 되면 순종은 쉬워진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결코 녹록하지 않다. 바로 이런 때에 누군가는 일어나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질문의 출발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에 보내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 얼마나 위대한 고백인가. 오늘 우리의 기도도 이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