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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목사님의 서재’라는 글을 부탁받고 한동안 고민했다. 독서를 부지런히 하거나 책을 많이 모으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책과 함께한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책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신앙과 목회를 돌아보기도 했다.
■예수님을 만난 뒤, 독서의 중심이 바뀌다
20대 초반 예수님을 만난 뒤 독서의 중심은 성경으로 옮겨갔다. 30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독서의 폭이 넓어졌고, 교회를 개척한 뒤에는 신학과 목회 관련 책을 통해 교회와 성도, 설교와 기도를 배웠다. 책은 삶과 목회를 배우는 동반자가 됐다.
60세를 넘기며 책장을 정리하면서 끝까지 남긴 책은 30여 권이다. 많은 책보다 내 삶에 어떤 책이 남아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고 다시 읽고 싶으며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다. 직접 책을 출간하면서 한 권의 책에 담긴 저자의 지혜와 경험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됐다. 책 한 권은 한 사람의 인생을 건네받는 일과 같다.
■삶을 비추는 책, 역사를 보게 하는 책
오랫동안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은 책은 주남선 목사의 전기 『해와 같이 빛나리』다. 거창에서 섬긴 주 목사는 신사참배와 6·25전쟁의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과연 저렇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한다. 좋은 책은 지식을 넘어 삶을 비추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김영재 교수의 『한국교회사』는 교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교회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오늘의 교회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성경을 평생 파고든 한 사람
박희천 목사의 『내가 사랑한 성경』은 ‘성경을 먹어야 성경이 나온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한 책이다. 성경은 설교를 위한 자료가 아니라 목회자가 먼저 먹고 살아야 할 생명의 말씀임을 깨닫게 했다.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목회자의 글이 어렵기보다 정확하고 간결해야 하며, 잘 쓰는 것보다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정필도 목사의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는 기도의 본질을 돌아보게 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무릎 꿇는 것은 다르다. 결국 목회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다.
■신학이 삶의 신앙이 되기까지
신학 서적 가운데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뵈트인의 『칼빈주의 예정론』이 특별하다. 『기독교 강요』를 통해 신앙의 기초교리를, 『칼빈주의 예정론』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깨달았다. 신학 공부는 교리를 아는 것을 넘어 내가 누구를 믿으며 누구의 주권 아래 살아가는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었고, 목회의 믿음의 기초가 됐다.
최근에는 서영호 목사의 『기도의 모델 주기도문』과 안재경 목사의 『예배수업』을 통해 익숙한 기도와 예배의 본질을 새롭게 돌아봤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원작이 어렵다면 『리마크블 천로역정』을 권하고 싶다. 그림과 간결한 내용으로 신앙의 여정을 쉽게 보여줘 새신자와 어린이, 청소년에게 좋은 책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모모』가 다시 말을 걸다
성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가운데 미하엘 엔데의 『모모』도 있다. 50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은 책으로, 수백 권의 책을 읽었지만 지금까지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이 책을 읽으며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사는 것이 반드시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바쁘다는 이유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공병호의 『김재철 평전』은 특히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8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볼 수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길을 평가하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후배 목회자에게는 삶을 보여주는 책을
후배 목회자들에게는 이얀 머레이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초기 40년』을 권하고 싶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일상과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젊은 목회자들이 한 목회자의 삶과 자세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윤선 목사의 주석도 권하고 싶다. 설교와 말씀 연구에 깊이를 더하면서도 경건함을 잃지 않는 주석서다. 글을 쓰는 목회자에게는 『기자의 글쓰기』도 가까이 두기를 권한다. 백영희 목사의 『설교록』과 정필도 목사의 『목회 명심보감』은 설교 준비와 영성을 가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백영희 목사의 설교록은 영적인 각성과 진리를 깨닫게 하고, 『목회 명심보감』은 목회자로서 어떤 자세로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를 마음에 새기게 한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신앙의 역사
서재에서 가장 특별한 책은 조수옥 전도사의 생애를 담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이다. 마산 인애원을 설립한 조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평양감옥에서 6년간 옥고를 치르면서도 믿음을 지켰다. 직접 만나 교제했던 기억이 있어, 책을 펼칠 때마다 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낸 신앙의 선배를 다시 만나는 듯하다.
독서의 목적도 달라졌다. 젊을 때는 신학과 목회에 필요한 지식을 얻었다면, 지금은 사람과 시대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을 찾는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 ‘이 책을 통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로 질문이 달라졌다.
지금도 다음세대와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교회학교를 리셋하라』와 『강소교회 로드맵』을 읽는다. 책에서 얻은 지혜를 목회에 적용하고 교회의 내일을 준비하는 것 또한 목회자의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책장을 비우며 더 많이 남게 된 것
이제 책장을 정리하며 많은 책을 떠나보내고 있다. 책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남겨야 할 책은 많이 읽은 책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고 다시 읽고 싶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성경을 통해 삶의 길을 배웠다. 신학교와 목회의 시간을 지나며 수많은 책을 만났지만, 그 중심에는 늘 성경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소중하게 남겨두고 싶은 책은 성경이다.
책은 떠나보낼 수 있어도 말씀은 떠나보낼 수 없다.
책장을 비우는 일은 결국 내가 평생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