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물을 마셔야 숨을 쉴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은 하늘이 허락해야만 내리는 선물이다. 물줄기는 신이 주신 최고의 축복이자 생명의 젖줄임에 틀림이 없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바싹 말라가는 농부들의 애타는 하소연이 한숨이 되어 들려온다. 바짝 마른 논바닥을 바라보는 마음은 타들어 가고, 대지는 기다리다 지쳐 신음 한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목마르다 부르짖었건만, 막상 비가 쏟아지니 이제는 홍수로 피해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무섭게 다가오는 자연재해, 어쩌면 인간의 실수로 산의 나무를 다 태워버린 결과인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비를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저 허망하게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는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덮쳐버렸다. 뿌리를 잃은 산은 무섭게 무너져 산사태가 났고, 거대한 흙더미는 아파트까지 덮쳐 인명 피해를 냈다. 산 아래 거주하는 주민들은 황급히 근처 학교로 대피했고, 연락이 끊긴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이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밤새 쏟아지는 빗소리에 잠 못 이루며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온종일 방송에서는 불어나는 강물 소식, 도로 통제와 교통두절 소식. 피해 상황을 알리는 안내가 끊이지 않는다. 소식에 겁먹은 사람들은 그저 떨고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양은 다시 떠 올랐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난의 소식은 우리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다. 누군가는 교통두절로 약속이 취소되는 불편함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집이 소실되고 논밭이 순식간에 사라져 삶의 터전을 잃었다. 흙더미로 변해버린 땅을 바라보며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부들의 한숨 소리만 깊어 간다. 도심 한복판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차량이 매몰되고 지나가던 행인이 빠지는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 재앙의 한복판에서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을 목격한다. 사방이 물로 넘쳐나는 홍수 속인데, 정작 목마름을 축일 ‘마실 물’은 단 한 모금도 없다는 사실이다. 물, 물, 물. 생명, 생명, 생명. 이 생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결국 물이기에, 절망의 순간에도 물의 절실함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는다.
곳곳마다 산과 들을 할퀴고 간 상처는 누런 황토물이 되어 푸른 바다로 흘러 들어갔고, 바다는 온통 황토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얼마나 열심히 파도가 몰아쳐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가 잠든 밤에도 파도가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바다는 세이레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고운 코발트색을 되찾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이 섭리의 과정을 눈으로 똑똑히 보며, 파도가 가진 치유의 신비를 다시금 깨닫는다.
차창 너머로 아직도 쏟아지는 빗줄기.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참상을 바라보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물이 무서운가, 불이 무서운가.”
아무래도 물이 무서운 것 같다. 불이 나면 물로 끌 수 있지만, 넘쳐흐르는 물은 인간의 어떤 힘으로도 막아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과 불, 둘 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지만, 결코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즐겨 누리는 탁 트인 바다도, 목을 축이는 한 모금의 물도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생명의 젖줄을 쥐고 흔드는 그분 앞에서 결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대자연의 거대한 섭리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그분의 선한 손길이 이 땅과 우리의 삶에 따스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오늘도 파도는 변함없이 넘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