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던 박 목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사모의 영적 확신과 꿈 이야기를 들은 박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임을 직감했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되어 이튿날 수요예배에서 "하나님의 종은 부르는 곳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광고를 해버렸다.
그해 11월 23일, 박병지 목사는 수개월간 비어있던 김해 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교회는 사택 월세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이 컸다. 박 목사는 빚을 줄이기 위해 사택을 빼고 교회 안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교회 장의자와 차량까지 처분하며 오직 목회와 기도에만 전념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꾸신 성전 건축의 기적
1997년 내동에 성전을 건축하려 할 때, 예상치 못한 큰 시련이 닥쳤다. 시장 상인들의 극심한 반대로 밤새 염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위가 이어졌다. 법적 하자는 없었으나 민원이 빗발치자 토지공사에서는 계약금을 돌려주며 다른 부지를 제안했고, 놀랍게도 계약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돌려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김해시 건축과의 추천을 받아 유치원 부지였던 현재의 자리에 교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건축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성도들은 집을 담보로 잡고, 청년들은 적금을 헐며 헌신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교육 부지 특성상 은행 대출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돕는 손길을 보내주셨다. 한 성도의 먼 친척이 강원도에서 김해까지 찾아와 선뜻 1억 5천만 원을 빌려주었고, 잔금 지급을 하루 앞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교회 내 시각장애인 형제의 주선으로 '맹인신협'을 통해 극적으로 자금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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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지 목사는 “당시 이곳은 허허벌판이었으나, 교회를 짓고 나니 길이 나고 학교와 아파트가 들어섰다”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다.
■ 다음세대의 요람 '양문유치원'과 말씀으로 살아나는 'QT 사역'
성전 건축 후 2001년 3월, 4개 학급 114명으로 문을 연 양문유치원은 현재 저출생으로 많은 유치원들이 문을 닫는 위기 속에서도 지역 불신자 부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특별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양문유치원은 원생을 모집할 때부터 ‘예배 중심의 교육’을 분명히 고지한다. 매주 아이들은 교회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기독교 가치관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직접 차량을 운행하며 아이들을 등하원시키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정도다. 박 목사는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이 인생의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된다”며 다음세대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양문교회의 또 다른 시그니처 사역은 'QT(말씀 묵상)'이다. 박 목사는 35년 동안 ‘생명의 샘가’ 큐티책 집필진으로 참여하며, 전 성도들이 ‘생명의 샘가’를 통해 경건의 시간을 갖고 주님과 긴밀한 교제를 통해 매일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훈련해왔다.
인천에서 김해로 내려온 지 18년 된 심영미 집사는 “성경이 늘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예배마다 목사님이 QT 형식으로 말씀을 풀어주시니 깊은 깨달음과 은혜를 얻는다”고 전했다. 이어 “성도들이 대형교회처럼 많지는 않지만,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내며 사모님이 반찬을 나누고 성도들은 텃밭 채소를 가져와 함께 나누어 먹는 끈끈한 정이 있는 교회”라며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 지역 사회의 선한 영향력으로 피어나는 미래
거친 허허벌판에 세워져 이제는 지역 사회의 든든한 영적 보금자리가 된 양문교회.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함께 나누어 먹는 성도들의 소박한 미소 속에서, 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양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말씀 묵상과 다음세대 양성으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양문교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