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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사역의 시작
강정식 목사가 십자가 제작 사역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제 소랑교회에서 목회하던 강 목사는 우연히 교계의 대표적인 십자가 수집가인 송병구 목사(의왕 색동교회)의 저서 『십자가 사랑』을 읽게 되었다.
책을 덮으며 그의 마음속에는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라는 깊은 질문이 맴돌았다. 송 목사처럼 아름다운 십자가들을 수집하고 싶었지만, 해외에 나갈 기회가 흔치 않았던 그는 뜻밖의 결심을 하게 된다. “수집할 수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들자.” 그것이 오늘날 1,500여 점에 이르는 ‘십자가 행전’의 출발점이었다.
봉덕교회에 부임한 첫해 사순절, 강 목사는 성도들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각자 자신만의 십자가를 만들어 전시해 보자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이쑤시개, 병뚜껑, 철사, 못, 시계 등 집안에 굴러다니던 폐품들을 모아 저마다의 마음을 담은 십자가를 만들어왔고, 그렇게 80여 점의 첫 작품들이 모였다. 과거 저주와 심판의 형틀이었던 십자가가 성도들의 손을 통해 사랑과 생명의 상징으로 탈바꿈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봉덕교회는 매년 창립주일과 사순절 절기마다 십자가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전시를 원하는 이웃 교회들에게도 무료로 작품을 대여하며 십자가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다.
■목양실 구석에서 피어난 1,500여 점의 기적
강 목사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다. 발길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든 주변을 둘러보며 재료를 찾는다. 산을 걸을 땐 돌을 줍고, 잘려 나간 나무를 보며 그 결 속에 숨겨진 십자가 형상을 발견한다. 언젠가 주운 돌에는 선명한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무심히 버려진 나무토막 안에는 뚜렷한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기도 했다.
“모임이 있으면 어느 곳이든 주변에서 재료를 찾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보이지만,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예수님의 은혜로 쓸모없던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버려진 폐품 조각들이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가치를 얻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쁩니다.”
현재까지 강 목사가 제작한 십자가 작품은 모두 1,500여 점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 80~90%가 일상에서 수명을 다한 재활용 폐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버려진 첼로와 기타, 컴퓨터 키보드, 유리병, 빨래판 등 사람들이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긴 물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고, 세상에 하나뿐인 십자가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버려진 인생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작품들이다.
강 목사에게는 화려한 공방이나 전문 작업실이 없다. 길에서 주워 온 재료들을 목양실 한구석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틈이 날 때마다 작업에 몰두한다. 커터칼과 톱, 그라인더 등 소박한 도구가 전부지만, 오랜 시간 정성과 기도를 담아 하나하나 깎고 다듬으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그는 “좋은 목재로 만든 근사한 십자가는 아닐지라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마음과 사랑이 담긴 십자가”라며 “예술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메시지와 진심”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폐품이 십자가로 다시 세워지듯, 그의 작품에는 상처 입은 영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될 수 있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눈으로 보는 전시가 아닌, 온몸으로 ‘경험하는 십자가’
일반적인 전시회에는 ‘손대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강 목사의 전시회는 다르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직접 만져보십시오”라고 권한다. 강 목사는 “십자가는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니라 삶으로 체험하는 사랑”이라며 “손끝으로 느껴지는 거친 질감 속에서 주님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전시회는 단순한 작품 감상이 아니라 묵상과 회복, 그리고 복음을 만나는 영적 체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녹슨 철과 폐목재 등 거칠고 투박한 재료를 손끝으로 느끼며 십자가의 고난과 구원의 은혜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전시회는 단순한 감상이 아닌 묵상과 회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의 숨겨진 달란트가 발견되는 감동도 이어졌다. 현재는 노환으로 작업을 내려놓았지만, 올해 여든을 넘긴 한 집사는 수천 개의 이쑤시개를 하나하나 자르고 색칠하며 8개월에서 1년에 걸쳐 성화를 완성했다. 보석 십자수를 놓은 듯 정교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강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주님을 위해 쓰일 때 아름다운 복음의 통로가 된다”고 말한다. 버려진 폐품이 십자가가 되고, 평범한 성도의 손길이 복음의 작품이 되는 현장. 그곳에서 사람들은 눈으로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체험하는 십자가의 은혜를 만나고 있다.
■성경 속 나무 40종으로 세우는 비전, 그리고 ‘십자가 박물관’
최근 강 목사는 새로운 도전에 한창이다. 좁은 병 속에 십자가를 조립해 넣는 ‘병 속의 십자가’ 작업이다. 어디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운 적이 없기에 숱한 실패를 겪으며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지만, 쓸모없이 버려진 병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탄생하는 십자가를 보며 힘을 얻는다.
그의 향후 목표는 성경에 기록된 40여 종의 나무들로 각각의 십자가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대추나무, 대나무, 단풍나무, 감람나무, 싸리나무, 뽕나무, 석류나무 등 10여 종의 나무로 작품을 완성했고, 남은 30여 종의 나무를 구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지역과 환경에 따라 나무의 색깔과 질감, 그리고 고유의 향기가 모두 다릅니다. 앞으로 교회 뜰에서 자란 나무들과 정원수들까지 모아 그 고유한 생명력 안에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습니다.”
강 목사의 최종 비전은 이 모든 작품을 모아 ‘십자가 박물관(전시관)’을 세우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는 기증받은 고서 한문 성경, 초기 외국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성경,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기드온 성경과 필리핀어 성경 등 80여 권의 소중한 역사적 성경들도 보관되어 있다. 이 성경들과 1,500여 점의 십자가를 한데 모아 복음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다.
세상이 가치 없다고 외면한 조각들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발견해 내는 강정식 목사.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그의 소박한 손길은, 오늘도 버려진 폐품 위에 조용히 생명의 복음을 아로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