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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영희 집사는 이내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주님을 만나 팔자가 고쳐진 여인입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끝없는 절망의 수렁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았고, 이제는 수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불타는 전도자가 됐다. 지난 12년 동안 그를 통해 주님을 만난 이들만 수천 명.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전도대상을 휩쓸며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린다.
■모진 폭력과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은혜
이 집사의 과거는 깊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결혼생활은 잔혹한 폭력의 연속이었다. 알코올 중독과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의 폭력 속에서 술병과 연탄집게, 망치와 칼이 일상처럼 날아들었다. 그의 몸과 마음은 성할 날이 없었다. 남편에게 맞아 뇌출혈로 실신해 생사를 오갔고, 칼에 찔린 허벅지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패혈증으로 걷지 못할 위기까지 겪었다. 제초제를 강제로 마셔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는 의사로부터 “살 가능성이 없다”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를 기적처럼 살려내셨다. “당시 딸이 다섯 살이었어요. ‘하나님, 저 어린아이 외롭지 않게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게 해주세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주님은 그 처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남편이 장기 입원하게 되면서, 이 집사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연고가 없던 창원으로 내려왔다. 생계를 위해 작은 옷가게를 시작하며 모진 숨을 이어갔다.
■“하나님께 단단히 삐져 있었습니다”
창원에서 밤낮없이 장사를 시작했지만, 마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많은 교회에서 전도하러 찾아왔지만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자신을 그 고통 속에 방치하셨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향한 서운함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도자들이 오면 쌀쌀맞게 내쫓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 단단히 삐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하나님도, 부모도,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악착같이 살며 겉으로는 강해 보였지만, 속사람은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인생을 바꾼 한 구절, “다 내게로 오라”
인생의 영적 전환점은 2014년에 찾아왔다. 둘째 언니의 권사임직식 초대를 전후해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던 중, 언니의 간곡한 권유로 명곡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 사실 집에서 너무 가까운 교회라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번만 가보라”는 언니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절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말씀은 그의 심장을 깊이 관통했다. 딸을 키우고 빚을 갚으며 살아남기 위해 명절 하루를 제외하곤 쉬어본 적이 없던 일중독자였다. 그런 그에게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는 주님의 음성은 거대한 위로로 다가왔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교회만 가면 울었어요. 그동안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나 혼자 다 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기쁨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회개’였다.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고백했고, 과거 자신을 전도하려 애썼던 이들에게는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열심히만 살면 장땡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잘못한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신기하게도 회개할수록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닫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교회 등록 다음 주부터 곧바로 거리로 나갔다. 전도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말 한마디에 순종한 지 12년, 그는 단 한 번도 전도를 쉰 적이 없다.
■‘위기’의 옷가게에서 피어난 ‘오만이 전도법’
그의 전도 인생에 이정표가 된 사람은 교회의 전도왕 박춘자 권사였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자녀와 손주들이 믿음 안에서 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 집사는 꿈을 품었다. ‘나도 권사님처럼 전도해서 우리 딸과 손주들에게 최고의 유산을 물려주리라.’
그날 이후 옷가게를 ‘작은 선교지’로 삼았다. 손님만 오면 교회 이야기를 했고 벽마다 말씀을 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손님들이 부담을 느껴 발길을 끊었고 장사는 급격히 어려워졌다. 낙심해 언니에게 전화를 걸자 언니는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지금이 바닥이다. 더 망할 게 어디 있냐!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이 한마디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적 지지대가 됐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과거 자신을 찾아와 묵묵히 섬겨주었던 주준석 목사와 강영단 사모의 사랑이 떠올랐다. 그들은 교회에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가게 실밥을 정리해 주고, 말없이 기도해 주며, 그의 맺힌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여기서 착안해 정립한 것이 바로 ‘오만이 전도법’이다. 오만이는 ‘오라, 만나자, 이야기 들어주자’의 줄임말이다. “전도는 내 말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귀를 열어 경청하다 보면 그 사람의 아픔과 기도 제목이 나오고, 비로소 하나님의 때가 보입니다. 전도는 결국 섬김이고 관계입니다.”
‘오만이 전도법’을 품자 전도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대상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스님과 비구니, 무당들에게도 서슴없이 “오라버니”, “언니”라 부르며 따뜻하게 다가갔다. 진심 어린 섬김과 경청을 경험한 이들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영희 따라 교회 가보라”고 권할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 집사는 전도를 특별한 은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도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섬김입니다.
■“영희야, 애썼다… 고맙다”
만약 과거의 모진 폭력과 상처 속에서 신음하며 울고 있던 ‘젊은 날의 영희’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잠시 눈시울을 붉히던 이 집사는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영희야, 너는 그때 최선을 다했단다. 그리고 그 아픈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고맙다.”
이어 깊은 고백을 덧붙였다. “하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를 불러주셨죠. 제가 지금까지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시대의 사마리아 여인, 복음의 통로가 되다
이영희 집사는 ‘현대판 사마리아 여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인생의 깊은 상처와 절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눈물과 아픔은 누군가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고, 그가 받은 은혜는 또 다른 생명을 구원하는 사랑의 다리가 되었다. 오늘도 그는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심장을 품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전도동력세미나 강사로 영적 도전을 주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전도는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듣고 섬기는 순종의 삶임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간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