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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동행
첫째는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을 때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기대하는 점수에 못 미칠 때, 사업가들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얻을 때, 우리 목회자들은 기대하는 만큼의 교회 성장을 못 이룰 때 등등이다.
두 번째는 오해와 비난으로 인한 낙심이다.
선한 마음으로 행한 일에 대한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 더욱 그리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살후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시화 운동하면서 낙심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아름다운 결실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이 세상에는 낙심할 일이 날마다 발생한다.
마귀는 낙심이란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주의 일을 포기하게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고후 4장 1절과 8절에서도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께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14절에서 밝히고 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자신이 그렇게도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복음의 열매인 많은 성도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함께 서게 됨을 믿는 믿음이다.
다음으로 낙심하지 않은 방법(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법을 알아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
첫째로, 속 사람을 강건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낙심케 하는 것들이 도전해 와도, 내 속 사람이 강건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16절에서 겉 사람과 속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
겉 사람은 날이 갈수록 낡아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낡아져 가는 겉 사람으로서는 낙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오히려 깊은 낙심의 늪으로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 사람의 능력으로 낙심하지 않고 더욱 영력 있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 사람은 무엇으로 강건해 질서 있는가?
엡3:16절에 그 답이 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로 성령이다.
가수 노사연의 바램이라 노래 가사 가운데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가사가 있다.
막연하게 세월 따라 늙어가며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영적 익어감을 노래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영적 익어감을 위해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속사람의 새로움을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의 삶을 위해 기도와 말씀 훈련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두 번째의 방법은 환난이 닥칠 때 보이는 환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17절에서 두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는, 이 땅에서 환난을 받아야 영원한 나라에서 영광의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둘째로, 이 땅에서 받는 환난은 잠시 받는 것이며 경한 것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장차 받을 상급은 지극히 크고 영원하며 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환난이 닥치어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때 낙심하지 않게 된다.
환난이 닥칠 때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지만, 고난의 시간이 끝났을 때는 잠깐 있었던 밤의 한 경점 같은 것이다.
바울 사도의 환난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고후1:8에서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4:11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고”라고 고백한다.
바울 사도는 30년 사도직 수행하고 서기 67년경에 순교했다.
그러나 지금 천국에서 2000년 넘게 영광스러움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땅의 현실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현실의 것만을 주목하다가 낙심 절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주목하는 가운데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