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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역사 재조명 ①

성재효 장로 기자 입력 2026.09.07 13:48 수정 2026.09.07 13:48

신사참배 거부한 경남노회, 호주 선교부의 유산
6·25와 경남 교회의 회개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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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3일 만에 유엔군 참전 결의
가능성 없다던 인천상륙 작전 성공
하나님 개입 없이 불가능했던 일

경남 노회, 전국 유일 신사참배 거부
노회장 등 기독교 지도자들 순교
호주 선교사 통해 하나님 만남 감사

6·25 동란으로 임시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진 후 구국 기도회를 갖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250여명의 지도자들
6·25 동란으로 임시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진 후 구국 기도회를 갖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250여명의 지도자들

1. 6·25와 경남 교회의 회개 기도회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1950년 8월 30일 당시 부산 초량교회에서 기약 없는 회개의 기도회가 시작됐다. 공산군의 총공세를 앞두고, '우리가 잘못해서 나라를 잃게 되었다.'는 자성과 함께 "나라를 살려달라"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기도회는 16일간 계속됐고, 기도회가 끝나는 9월 15일 새벽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13일 만에 서울이 수복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당하고, 7월 말에는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하는 경남·북 일부만 남아 국가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김일성은 신속하게 북한을 장악하고 소련과 중공의 지원으로 정규군 26만 6천여 명(국방부 자료)에 예비군 수십만까지 갖추어 전쟁을 일으켰으나, 당시 한국군은 10만여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지역에 흩어져 치안유지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밀릴 수밖에 없었던 전쟁은 파죽지세로 1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 그러나 유엔의 신속한 참전 결의에 따라 유엔군이 들어오면서 낙동강 방어선은 1달여 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8월 말 포항과 대구, 그리고 마산으로 이어진 전선은 북한군의 총공세 앞에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었다.

이때 부산 초량교회에서는 전국에서 몰려든 250여 명의 목회자와 수백여 명의 성도들이 '구국 기도회'에 참석했다. 회개의 눈물 기도는 16일간 계속됐다. 당시 참석자의 증언에 의하면 기도회 시작 3일부터는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기약 없이 시작된 기도회는 9월 14일까지 계속됐고, 15일 새벽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


과연 ‘인천 상륙 작전’ 성공과 기도회는 우연의 일치였던가?

 

맥아더라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당시 미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UN 소속 군인들은 역사 이래 최초로 오직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국 땅에서 목숨을 걸었다. 낙동강 전선 사수만이 한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후퇴를 요구하는 부하 장병들에게 "우리가 후퇴하면 한국민 수백만 명이 죽는다."며 "여기서 막거나 죽어라."라는 유명한 명령을 내렸던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해리 워크 장군 등과 같은 유능한 군인들이 있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꽃다운 20세 전후의 학도 호국단, 열악한 가운데서도 목숨을 초개 같이 던진 우리 국군이 이 나라를 구한 일등 공신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무초 미 대사를 불러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방위지원에 인색했던 섭섭함을 토로하며 "그렇게 요구했건만 미국이 들어주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는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겠다."라고 최후통첩했다. "미국이 지켜주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으니 국민의 희생을 줄이는 것은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단호한 결심 앞에 미국은 발 빠르게 유엔을 움직여 파병을 결의하고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유엔군 참전을 결의한 일이나, 인류 역사 최초로 극동의 작은 나라를 구하고자 16개 국가가 군인을 보내 참전한 일이나, 군사 전문가들조차 가능성이 없다고 반대했던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한 일 등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초량교회 기도회에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고, 눈물로 호소했던 경남 교회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한국을 살려 주신 것이다.


2. 신사참배 거부한 경남 노회

경남 교회의 회개와 구국 기도회는 경남 교회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경남 교회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일제에 맞서 당당하게 거부했던 전국 유일의 노회다. 일제에 맞섰던 신앙의 지조는 참으로 고귀한 것이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이었다. 이 결정 후 탄압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1938년 6월 12일 경남 노회는 당시 해운대 교회에서 일본 순사들이 교회 안팎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신사참배와 관련해 일제와 협의하기로 했던 노회의 입장을 포기한다.'라는 결정을 내리고 회의를 산회했다. 신사참배를 결의하라고 했던 일본 경찰의 강요를 간접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당연히 노회장 최상림 목사는 이 일로 순교해야만 했고, 한 상동, 주 남선 목사 등 경남 교회 지도자들의 탄압과 당시 평양 산정현 교회를 맡고 있던 주기철 목사 등 숱한 경남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순교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조선 장로교 총회는 경남을 제외한 전국 노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뒤이어 그해 9월 10일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신사로 향했고, 단체로 신사에서 고개를 숙임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치욕으로 기록됐다. 그런 면에서 경남 노회의 결정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천주교, 불교 등 모든 종파가 신사참배 찬성)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평양이 신사참배에 앞장선 죄악으로 공산당의 소굴이 되었고,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지킨 경남 교회로 인해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살리셨다는 논리가 억지라고 할 것인가?

창원 호주 선교사 순직묘원에 안장된 8명의 선교사들은 복음전파와 개화활동을 하다 과로와 풍토병에 걸려 한국 땅에서 숨졌다.
창원 호주 선교사 순직묘원에 안장된 8명의 선교사들은 복음전파와 개화활동을 하다 과로와 풍토병에 걸려 한국 땅에서 숨졌다.


호주 선교사 묘원 제막식
호주 선교사 묘원 제막식
3. 호주 선교부가 준 유산

경남 기독교의 올곧은 신앙은 호주 선교부의 영향이다. 영국 장로교 신앙을 계승한 호주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호주 선교부는 '일제의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며 앞장서 반대한 매클라렌 선교사(정신과 의사, 한국명 마라연)를 필두로 5명의 선교사가 전국 최초로 옥중 수난을 겪었고, 이들은 그 뒤 강제 추방됐다.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경남 교회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반대할 수 있었다.
'경남 교회가 움직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호주 선교사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호주 선교사들로 인해 하나님을 만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 테이프 커팅식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 테이프 커팅식

제막식 후 기념촬영(중간에 존 브라운 선교사 부부).
제막식 후 기념촬영(중간에 존 브라운 선교사 부부).

4. 경남 선교 역사 기록의 의미

필자는 2023년 10월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백서'를 발간했다. 당시 마감 시간에 쫓겨 제대로 정리를 못 했고, 일부 내용의 오류도 있었다. 백서 발간 기념으로 2024년 3월 호주를 방문했고, 선교사 파송과 관련한 기관과 교회를 방문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호주 선교사 가족 초청 행사
호주 선교사 가족 초청 행사
매년 10월 2일을 경남 선교의 날로 지정하고 행사를 갖는다. 2019년 경남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선교사 가족을 초청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매년 10월 2일을 경남 선교의 날로 지정하고 행사를 갖는다. 2019년 경남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선교사 가족을 초청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경남에서는 2008년 12월 1일 경남 복음화를 위한 교단을 초월한 준비 모임이 시작되어 다음 해 1월 9일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가 창립되었고, 가장 먼저 이 땅에서 순직한 호주 선교사들을 기리고자 '호주 선교사 묘원'을 2009년 9월 28일 조성했다. 다음 해 10월 2일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건립했으며, 이를 계기로 선교사 후손과 생존 선교사들 30여 명씩을 초청하는 보은 행사도 2번이나 했다. 이 15년간의 활동을 정리하여 2023년 10월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백서'를 발간했었다. 따라서 이번 기획은 백서를 근거로 하여 호주 선교부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남 선교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자 기획했다.

* 예고 : 다음 호 제목 '한국 기독교의 시작'


편집자 주 --------------------------------------------------

글과 사진은 기존 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백서를 참고했고 선교사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은혜의 증인들'(존 브라운 지음/정병준 옮김)과 '진주 노회사'(박용규 이영식 조헌국) 역사편을 참고했다. 사진은 백서에 기록된 대로 무단 사용이 금지된다. 사진의 권리는 여전히 권순형 크리스챤 리뷰(호주 발행) 발행인에게 있다. 역사 사진을 사용하려면 다음 주소로 연락하여 승인 받은 후 사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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