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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세워진 교회 이정표 - 이현두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9.21 11:03 수정 2026.09.21 11:03

목회일기

이현두 목사
합천유천교회

이현두 목사
이현두 목사
올여름 햇볕은 참 독했습니다. 논밭의 작물만 타들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가에 세워 둔 교회 간판까지 그 뜨거움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유천 교회를 처음 찾아오는 외부 손님들이 가끔 길을 잃습니다. 네이버 지도, 원 내비, 카카오 내비 등 사용하는 내비게이션마다 교회로 들어오는 길을 조금씩 다르게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내비마다 제 소견대로 길을 가르쳐 주는 셈입니다.

유천 교회로 들어오는 길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창녕이나 합천 방면에서 적교를 거쳐 필재 고개를 넘어오는 길이 있고, 필재 고개를 넘기 전에 낙동강 제방 둑 아랫길 쪽으로 돌아 들어오는 길도 있습니다. 문제는 낙동강 제방둑 아래로 들어오는 분들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다가 상포교를 건너 의령군 낙서면 상포 마을 쪽으로 넘어가 버린 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다시 돌아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낯선 시골길은 동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갈림길 하나가 나오고, 논둑길 하나가 갈라져도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이 길이 맞나?”.....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옛말에 “물어물어 가면 서울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길가에서 사람을 만나 묻기보다 내비게이션의 작은 화살표 하나를 믿고 움직입니다. 그러니 시골길에서는 작은 이정표 하나가 더욱 소중합니다. 또 시골의 한적한 도로에는 다니는 사람도 잘 없습니다. 물을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유천 교회를 알리는 간판은 필재 고개를 넘어 2차선 의합대로 앞에 세워 둔 낡은 간판 하나가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약 3년 전 그러니까 2023.8.9. 부산 신평로교회 선교부에서 회원들이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부산의 한 간판 집에서 간판을 제작하여 가지고 왔는데, 하필 설치하는 날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도 남전도회 회원들은 비를 맞아가며 간판을 세워 주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우의를 입어도 작업을 하느라 비에 젖었습니다.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채 간판을 세울 앵카의 구멍을 뚫고, 간판을 붙이고, 시멘트를 개어서 삽으로 구덩이에 붓고,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몇 번이고 살펴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세워진 간판이 삼 년 동안 길가를 지켰습니다. 그때 마을마다 총 6개를 세웠습니다. 마을 입구마다 갈림길마다 세웠지요.

“유천교회는 이쪽입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간판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폭염은 그 간판마저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연일 내리쬐는 햇볕에 철판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간판에 붙여 놓은 접착제가 열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오려 붙인 글자가 모두 뒤틀리고 색깔이 바랬습니다. 결국 간판의 천이 힘없이 아래로 처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속이 상했습니다.

“세상에, 이 폭염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구나.” 논밭의 작물도 사람도 지치는데 쇠로 만든 간판이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간판 가장자리에 실리콘이라도 단단하게 둘러놓았더라면 이렇게 맥없이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 년 전 비를 맞으며 간판을 세우던 그날, 몇 해 뒤에 이런 폭염이 찾아오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이제 천갈이를 다시 해야 합니다. 간판 하나 고치는 일이 별것 아닌 듯해도 농촌의 작은 교회에는 그 비용도 쏠쏠하게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냥 둘 수도 없습니다.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고 그 기업의 얼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간판은 교회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간판은 찾아오는 사람을 위한 배려입니다. 요즘 원진 마을 앞에는 새로 로터리가 생겼습니다. 함양과 울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있는데, 익구마을에 고속도로 IC가 생깁니다. 그것을 먼저 알고 정동마을 산 위에 있는 청정사 절에서는 벌써 로터리에 안내 간판을 세워 놓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어느 길로 들어가야 할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그곳에 안내 간판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멀리서 유천 교회를 찾아온 사람이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고, 좁은 시골길을 돌고 돌아 교회를 찾아온다면 얼마나 지칠까? 그때 갈림길 한쪽에 작은 간판 하나가 서 있다면 어떨까요? “유천 교회 2km →” 화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화살표 하나만 보아도 사람의 마음이 놓입니다. “아, 제대로 왔구나.” 길을 찾는 나그네에게 이정표(里程標)는 단순한 판때기가 아닙니다. 안심입니다. 배려입니다. 때로는 위로입니다.

성경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30: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생각해 보면 이것이야말로 이정표가 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그쪽이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시며 인생의 이정표가 다른 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유천 교회라는 이름을 적은 간판 하나를 다시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간판이 가리키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참된 길을 보여 주는 교회가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교회 문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길을 잃지 않게 하고, 인생의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복음의 길을 가리켜 주는 곳 말입니다.

올여름 폭염은 간판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접착제도 내려앉고 천도 주저앉았습니다. 다시 천갈이를 해야 합니다. 필재 고개를 넘어오는 길에도, 원진 마을 로터리에도, 낯선 나그네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작은 이정표를 추가로 하나 세워야겠습니다. 누군가 그 간판을 보고 길을 제대로 찾아와 교회 마당에 차를 세우며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 이제야 찾았네요.”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작은 화살표 하나도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 속에서 바로 그런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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