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이자 독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으로 알려진 말이다. 그러나 쇼는 화장을 했기 때문에 묘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사실인 양 재치 있게 사용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미루는 것이 인생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다.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하지 않는다. 감사해야할 때 감사하지 않는다. 만나야 할 때 만나지 않고 다음 기회만 본다. 더구나 기도마저도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미루기만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조금 더 있다 하자”“나중에 하지 뭐”“형편이 좋아지면 하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이미 너무 멀리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사람들이 내 뱉는 말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것을 미룰 때가 많다.” 나중에 성경을 읽겠습니다“ ”시간이 나면 기도 하겠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봉사하겠습니다”“때가 되면 용서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을 강조한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 7~8)” 신앙은 내일의 결심이 아니라 오늘의 순종이다.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오늘뿐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언젠가’라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기도하겠다”가 아니라 오늘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언젠가 사랑하겠다‘가 아니라 지금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언젠가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용서하는 것이다. ”언젠가 성경 릵겠다“가 아니라 지금 바로 성경을 펼쳐 보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 남는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높은 지위일까. 유명한 이름일까. 이런 것은 절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는 내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내일을 우리의 소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날이다. 우리의 인생이 마지막에 가서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후회의 문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하나님 앞에서 이런 고백이어야 한다. ”주님, 부족했지만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완벽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때마다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고백이다.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는 감사의 눈물이다.
추석명절이다.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이다. 삶을 돌아보는 여유도 한 번 가져 보아야 할 때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는 그날 나의 묘비명은 어떻게 새겨질까. 후손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릴까. 특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심판하실까. 정말 신앙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