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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14 - 양재한 은퇴장로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3.24 17:30 수정 2026.03.24 17:30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핚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양재한 은퇴장로
양재한 은퇴장로
3. 김동길 교수, 『이게 뭡니까』
2026년 1월 김형국 교수가 편찬한 김동길 교수 자서전 성격의 저작 『이게 뭡니까; 김동길 육성』이란 신간이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김동길 교수는 수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자신의 자서전은 완성하지 못한 채 2022년 10월 4일(95세) 코로나 확진 후유증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에 김동길 교수 만년에 10여 년 선생의 집을 출입한 서울대학교 교수 출신이자 마산 태생인 김형국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책이 금년 1월 『이게 뭡니까』란 서명으로 출간된 것이다.

김동길은 1928년 10월 2일 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에서 원남면장이던 김병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방신근은 25세 젊은 나이였다. 위로는 일곱 살 위인 누님(김옥길)과 네 살 위인 형님(김도길)이 계셨다. 누님 김옥길은 1961년 10월 1일부터 1979년 8월 31일까지 20여 년간 이화여대 총장으로 재직하셨고, 형님 김도길은 대동아전쟁 때 일본군에 1945년 6월 징집되어 한 달 후인 7월경 소련 만주 국경 부근에서 22세 젊은 나이 생을 마감하였다.
김동길이 기독교 신앙을 접하게 된 데는 그의 어머니 방신근의 영향이 컷었다. 그의 어머니는 김동길을 임신할 무렵 평안남도 맹산에서 어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김동길은 유아시절 그의 어머니가 바느질하시면서 불렀던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평양으로 거쳐를 옮기고 난 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대현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김동길은 평양상수공립심상소학교(초등학교)와 이어서 평양고등보통학교(평양고보)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평안남도 평원군에 소재한 괴천공립국민학교에 부임해(1945년 4월, 18세)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공간에서 자유를 찾아 어머니와 누나 김옥길과 함께 월남을 시도해 1946년 6월19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다음 해 김동길은 연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어수선한 시국상황이라 김동길이 평양에서 평양고보를 졸업했다는 증언만으로 백낙준 총장은 연희대학교 영문과에 입학을 허락했다고 한다.
김동길이 연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9년 즈음 좌우익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그 대립의 사례로, 3·1절 행사가 좌우진영으로 나뉘어 남산과 서울운동장에서 각각 개최되었고, 급기야 충돌로 이어져 경찰이 발포하고 나서야 수습될 정도였다고 한다.그해 3월 17일 연희대학촌의 원한경 박사 집에서 선교사 부인과 연대 교수 부인 20여 명이 다과회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 원한경의 부인 에델(Ethel Underwood, 1888-1949)이 문을 열어주자 총이 난사되었고, 총탄을 맞은 원한경의 부인 에델은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하게 된다. 이 일은 사회 혼란을 노린 연희대학교의 민주학련위 위원장 등 공산당 소속 학생간부 3명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때 영결식은 새문안교회에서 3월 22일 학교장으로 치러졌고, 얼마 뒤 추모예배가 연희대학교 노천강당에서 열렸는데 각계각층의 대표들도 참석한 가운데 김동길은 학생을 대표해 추모글을 낭독하였다. 김동길은 연희대학교 재학시절 기독학생회 회장과 초대 ‘민선’총학생회장에 뽑힐 만큼 현실 참여에 적극적인 싸움꾼이었다고 한다.

이즈음 연희대학교의 원한경 박사와 최현배 교수가 아끼던 제자 강성갑 목사가 진영에서 한얼중학교를 설립해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차 방문해 강연했다는 신문기사와 증언이 발견된다. 원한경 박사가 한얼중학교를 방문한 때는 부인상을 당한 몇 달 후인 1949년 7월경으로 원한경 박사의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고 강연을 했다고 한다.
서울 연희대학 명예총장 원한경 박사는 진영 한얼중학교에서 경제적인 건축물(순흙집)시찰 차로 강 교장의 초청을 받아 지난 11일 돌연 내진(來進) 그 상오 11시 한얼중학교 강당에서 약 30분에 걸처 ‘인간은 표준에 움직여야 된다’는 제목 아래 강연이 있었다(《민주중보》, 1949.7.15. ‘元博士 進永한얼中學校 視察談’).

최현배 선생께서는 사랑하고 아끼시는 제자가,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농촌학교를 창설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새로 구입한 부지에 흙벽돌집 1호 교실이 완성된 직후였다. 국가의 독립과 문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우리 한글도 장차 타이핑이 가능하도록 풀어쓰기를 하도록 연구 개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셨다(1회 졸업생 심사수 증언).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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