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극동방송 개국 30주년 특집 대담>
복음 전파 30년, 그리고 영원히
이건수 PD : 방송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창원 극동방송 이건수 PD입니다. 오늘 창원 극동방송 개국 30주년 특집 대담 <복음 전파 30년 그리고 영원히>에서는 지난 30년의 은혜를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30년의 사명과 비전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뜻깊은 자리를 위해 성재효 장로님, 명곡교회 이상영 목사님, 장유 중앙교회 이경로 목사님 세 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성재효 : 창원 극동방송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이상영 : 경남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극동방송이라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졌음에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이경로 : 축복합니다.
- 이 PD : 가장 먼저, 창원 극동방송 설립 당시에 경남 지역과 교계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성재효 장로님께 질문드립니다.
성재효 : 당시 경남 교계의 분위기는 일부 교단 중심, 혹은 대부분이 개교회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절이었지요. 우리 경남의 교회가 호주의 데이비스 선교사 이후 13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선교사가 들어온 초기에는 선교사님들이 연합활동을 통해 폭발적인 교회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분위기가 퇴보하기 시작해 30년 전에는 침체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방송과 같은 기독교 문화 전달 매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라는 사회적 울타리가 없어 교회 활동에 제약도 많이 따랐고요.
이상영 : 교파 단위로 균열과 반목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동방송이 매체를 통해 교회 담장을 낮추고 `우리`라는 의식을 심어주며 연합 운동의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경로 : 과거에는 방송국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던 척박한 시절이었습니다. 극동방송이 창원에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이 PD : 창원 극동방송 설립 태동 시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재효 : 앞서 말씀드렸지만, 교회 활동에 연합활동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창원 극동 방송국 개국 이전에는 이런 부분이 매우 부족했기에 연합활동에 뜻있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필요성을 공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기독교 문화라는 울타리를 만드는 것은 방송만 한 것은 없지요. 사실 방송 개국 이후 경남기독교총연합회, 홀리클럽, 경남 성시화운동본부 등이 창립되면서 연합활동이 활력을 갖게 된 것만 보아도 알 것입니다. 과거부터 뜻있는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방송 설립에 관심을 가졌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가음정교회 여성도들을 중심으로 기도가 시작되어 연합 기도회로 발전했고, 장로님들 중심으로 설립을 위한 실무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결실을 보게 됩니다. 장로였던 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동력을 얻게 되었는데 당시 마산에 거주하시던 김영삼 전 대통령 부친의 영향 등 여러 노력이 더해져 개국하게 되었습니다. 영남 최초의 극동방송이다 보니 대구와 부산 지역 교계의 경쟁과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 이 PD : 방송국 허가 당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을 텐데.
성재효 : 창원 극동방송 설립 추진위가 1995년 5월 말경 `허가촉구 궐기대회`를 준비했었어요. 그런데 이 행사를 앞두고 5월 19일 정부가 창원 극동방송을 연내에 허가하겠다고 발표를 합니다. 결국, 허가촉구 궐기대회가 허가 축하행사로 변했지요.
- 이 PD : 극동방송이 오늘의 극동방송 사옥을 마련하는 데 성 장로님의 도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성재효 : 제가 미약하나만 이 일에 관여하고 결실을 보게 된 것은 저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신 은혜라고 할 것입니다. 1995년 말부터 시험 방송을 하면서 더부살이로 시작하였는데, 당시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사옥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 박윤섭 장로님에게 이 부지를 알려주었고, 민산웅 지사장님과 셋이 현재의 사옥 위치에서 소나무를 잡고 기도하면서 시작됩니다. 사실 이 땅은 1980년도 신문기자로서 창원출장소를 출입하면서 눈여겨보았던 땅이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 2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확정되었지요.
- 이 PD : 이제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이상영 목사님, 그동안 창원 극동방송이 우리 지역에 미친 영향과 의의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이상영 : 문화 전달 툴인 방송이 지역 교회 소식들을 전달하며 교회의 `혈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철저히 보존하고 전달하여 나은 미래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경로 : 창원 극동방송의 전파가 경남 땅 구석구석을 덮어주어 복음화에 귀중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 PD : 창원 극동방송이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영 : 과연 3040 세대가 극동방송을 듣고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도 다양성을 수용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How-to)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경로 : 집중력이 떨어지는 세대를 위해 `1분 메시지` 등 짧고 다양하게 복음과 진리를 담은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 이 PD : `인구 절벽`, `다음 세대 감소`라는 문제 앞에서 창원 극동방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경로 : 다음 세대가 아닌 신앙의 바통을 이어줄 `이음 세대`를 위해 신앙 계승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구가 줄어든 만큼 한 사람, 한 가정을 끈질기게 품는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또 한 이음 세대가 직접 참여하여 콘텐츠를 제작하게 해 동력자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이상영 : 3040 세대를 이음 세대로 보고 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브릿지 역할을 방송이 해야 합니다. 가나안 교인들을 위한 `무빙 처치` 형식처럼 끊임없이 접근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 이 PD : AI 시대를 맞아 미디어 선교 측면에서 창원 극동방송은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경로 : 거짓 정보가 양산되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복음 큐레이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한 AI의 도움을 받아 경남 내 많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언어 장벽을 넘는 선교에 앞장서면 좋겠습니다.
- 이 PD : 마지막으로 30주년을 맞은 창원 극동방송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성재효 : 위로받고자 하는 이들이 방송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더 많은 영혼이 하늘의 위로를 얻기를 바라며, 또 앞으로 30년간 방송 선교에 열심히 매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경로 : 경남 지역의 영적 기상도와 흐름을 보존하는 `아카이브 역할`과 은혜로운 스토리를 발굴하는 역할을 감당해 주길 바랍니다.
이상영 : 창원 극동방송의 최고 영업은 `은혜`입니다. 성도들의 삶 속 신앙과 은혜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발품을 파는 방송이 되길 바랍니다.
- 이 PD : 세 분의 귀한 말씀 가슴에 깊이 새겨 생명을 살리는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애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 이 내용은 방송된 좌담회 내용 3부 중 `1부 과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편집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편집자 주
<창원극동방송 개국 30주년 감사 인사>
창원극동방송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방송가족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해 창원극동방송은 개국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996년 3월 1일, 역사적인 첫 전파를 송출한 이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오직 복음만을 전해왔습니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며, 소망 없는 세대에게 소망을 전하는 방송이 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 복음화율이 낮고 기독교 문화가 열악했던 경남 지역에서 창원극동방송은 복음의 나팔수이자 문화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그 결과, 척박했던 경남의 복음화율이 높아지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한결같은 30년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은 창원극동방송을 사랑해주신 교회와 방송가족 여러분 덕분입니다. 늘 방송사를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신 전파선교사와 운영위원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창원극동방송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창원극동방송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하는 나팔수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창원극동방송을 기억해주시고, 변함없는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30년을 함께 걸어와 주시고 사랑으로 동행해주신 모든 방송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