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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15 -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4.07 13:56 수정 2026.04.07 13:56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15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양재한 장로
양재한 장로
3. 김동길 교수, 『이게 뭡니까』 -계속
김동길 교수는 연세대학교 교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유신헌법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저항한 지식인이다. 그는 수업시간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유신헌법은 민주적 헌법이 아니라고 강의했으며, 이는 곧바로 당국에 보고된다. 이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로 구속된다. 이때 상황을 잠깐 들여다본다.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을 반대한 학생과 재야인사를 향해 정부는 ‘학생과 재야인사들이 정부를 전복하고 노동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발표를 한다. 당시 정부는 253명을 구속해 민청학련 관련자라 하여 비상보통군법회의로 넘겼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유신헌법은 비민주적인 악법이다. 지금 나의 심정은 피고인석에 있는 자들과 함께 서서 재판을 받고 싶을 정도’라고 쉽지 않은 폭탄선언을 한다. 이에 재판은 중단되었고 강신옥 변호사는 법정 구속된다. 재판 중 변호사의 변론이 문제가 되어 법정 구속되는 코메디 같은 시국에 김동길 교수도 수감자 중 한 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김동길 교수는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된다. 복역 중 특별사면을 받고 10개월 만에 풀려나지만 교수직은 박탈되었다. 그뒤 1979년 10·26사태 후 연세대학교에 복직한다.
복직한 그다음 해인 1980년 5월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대학에서 다시 밀려나 문경새재 고사리마을에서 누나 김옥길 총장(이화여대)과 함께 칩거생활을 하던 중 1984년 다른 해직교수들과 함께 다시 복직한다. 그 이후 정치 활동에 참여해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으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현실정치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였다. 김동길 교수는 이런 삶의 여정에서 대중강연과 정치평론에도 열심이었는데, 그때 정치평론에서 ‘이게 뭡니까’란 언사를 즐겨 구사해 유행어를 낳기도 하였다.

금년 1월 출간한 김형국 편저, 『이게 뭡니까; 김동길 육성』이란 김동길 자서전 성격의 책에는 김동길의 삶에 영향을 준 두 분의 스승을 소개하고 있다. 그 두 분은 백낙준과 함석헌이다.
김동길은 평양에서 월남 후 연희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백낙준 총장을 처음 만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총장시간’이 있어 본관 소강당에서 백 총장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 만났던 백낙준 총장의 가르침이 김동길 교수 평생 삶의 방향이 되었다고 한다. 책에 이런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총장 전용차가 없는 시절 백낙준 총장이 국제회의 참석차 출국할 때, 학생 김동길이 여행용 가방을 들고 선생을 배웅한 일이 있었다. 소공동에 있던 옛 반도호텔 자리에서 여의도 간이비행장으로 가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군 병사가 피우던 담배를 땅에 던지고 밟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고 한다. 가까이 있던 한국인 한 명이 그곳으로 달려가 땅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 피우는 걸 보고 백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저렇게 자존심이 없어서야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남이 피우다 던지고 간 꽁초를 주워서 피우다니 얼마나 한심한가.” 김동길 교수는 한평생 그 한마디를 잊지 않고 기억했으며, 삶의 자세를 한 번도 굽힌 적 없는 백낙준 총장의 곧은 삶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김형국 편저, 『이게뭡니까』, 140).
학생 김동길이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48년부터였다. 선생은 평안북도 용암포 출신으로 1919년 3·1만세 운동으로 평양고보에서 퇴학당하고 이승훈 선생이 경영하던 오산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생 김동길은 함석헌 선생의 일요정기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학생 김동길이 연희대학교 학생회장시절 함석헌을 초청강사로, 부산 피란시절과 서울이 수복된 이후에도 함석헌 선생의 강연엔 빠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함석헌은 5·16군사정변이 터지자 군사정권 반대의 일선을 담당했으며, 그 비판의 선두에 나서게 된다. 선생은 당시 암울한 시절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18년이나 계속된 박정희 군사정권이 유신헌법과 유신체제를 선포했을 때 유신반대를 부르짖으며 교문을 박차고 나와 1979년 10·26 사태를 불가피하게 만든 대학생들 대부분은 함석헌의 투지에 감동한 젊은 지성인들이었다. 그중에 학생 김동길, 그리고 교수가 된 김동길도 포함되어 있었다(김형국 편저, 『이게뭡니까』, 146).

김동길 교수의 『백년의 사람들; 김동길 인물한국현대사』에 ‘애국자이며 순교자인 그를 따르고자 결심했던 나, 6·25때 총살당한 비극’이란 강성갑 목사에 대한 추모글이 실려있다. 강성갑 목사가 1950년 8월 2일 수산교 다리 밑에서 공산주의자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쓰러지지 않았다면, 김동길 교수가 따른 스승으로 백낙준, 함석헌과 함께 강성갑 목사도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학생 김동길이 강성갑 목사의 어떤 삶의 모습을 따르고자 했을까. 다음 글에 계속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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