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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봄이 돌아오자 버려진 땅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대나무 뿌리를 캐내고, 칡넝쿨을 걷어내고, 돌을 골라내고, 흙을 뒤집었습니다. 땅속 깊이 박힌 대나무 뿌리는 참으로 질겼습니다. 괭이를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허리가 휘청거리고 척추가 끊어지는 듯했습니다.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 한쪽에는 이상한 기쁨이 피어났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화단 가꾸기가 벌써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황무지 같던 땅은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면 앵두꽃과 매화가 피고, 여름이면 초록 잎들이 교회 마당을 덮었습니다. 가을이면 대봉감과 대추가 햇볕을 머금고 익어갔습니다. 이미용·침술 봉사로 교회에 오시는 할머니들은 마당을 둘러보시며 감탄하셨습니다.
“어머, 교회가 완전히 꽃동산이 되어버렸네예.”
그러고 보니 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농사도 그렇고, 목회도 그렇고, 교회 화단도 그렇습니다. 돌보지 않으면 무너지고, 지키지 않으면 빼앗기고, 경작하지 않으면 다시 황무지가 됩니다. 아름다움은 방치 속에서 자라지 않았고, 열매는 게으른 손끝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 사실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2장 1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 두셨습니다. 에덴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상만 하는 낙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덴은 주어진 복이면서 동시에 맡겨진 책임이었습니다.
아바드와 샤마르 여기서 '경작하다'는 히브리어로 아바드 입니다. 이 말에는 '일하다, 경작하다, 섬기다, 하나님을 예배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땅을 가꾸는 노동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흙을 만지는 손도 하나님 앞에서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지키다'는 히브리어로 '샤마르'입니다. 이 말은 '지키다, 보호하다, 파수하다, 말씀을 지켜 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을 누리게 하셨지만, 동시에 지키게 하셨습니다. 경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맡겨진 것을 살피고 보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켜야 할 동산의 문턱에 옛 뱀이 침투했고, 하와는 미혹되었으며, 아담은 무너졌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은 그 존재를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부릅니다. 지키지 않은 동산은 침범당했고, 경작하지 않은 마음은 미혹의 밭이 되었습니다.
아바드는 경작하는 손입니다. 샤마르는 지키는 눈입니다. 목회도 이 두 가지를 함께 요구합니다. 말씀으로 영혼의 밭을 갈아야 하고, 기도로 교회의 울타리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 화단을 가꾸는 일도, 예배당 문을 여는 일도, 성도의 마음을 살피는 일도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는 모두 섬김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만으로 에덴이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27편 1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결국 경작하는 손 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고, 지키는 눈 위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땅을 갈아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 싹이 트고, 사람이 울타리를 세워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동산이 보존됩니다.
작은 시골교회의 마당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에덴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우려 한다고 다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맡겨진 땅을 경작하라. 맡겨진 영혼을 지키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수고 위에 은혜를 더하시고, 버려진 땅 같은 인생과 교회도 작은 에덴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