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20 -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6.22 16:06 수정 2026.06.22 16:06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20
:피란길에 찾아온 서울 손님, 김형석 교수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양재한 장로
양재한 장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피란민이 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쪽으로 피란길에 나선다. 그 피란길에 한얼중학교를 찾은 서울 손님도 많이 계셨다. 이들 중 한얼중학교에서 피란 생활을 기록으로 남긴 분이 계시는데, 우리가 잘 아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김형석 교수와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어판 발행인 이춘우 사장이 이에 해당된다.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란 신앙 수필집의 소제목 ‘죽음에 관한 생각들’이란 글에 이를 남기고 있고, 이춘우 선생은 자서전 『율원록(栗園錄); 하나님과 이웃과 흙을 사랑한 삶의 기록』의 소제목 ‘전쟁과 피난’이란 글에 이를 남기고 있다.

 
김형석 교수는 1950년 6월 27일 피란길에 나서 주로 교회(대연장로교회)에 마련된 임시 처소 등에서 피란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이 한얼중학교를 찾은 날은 선생의 책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의 기록과 《국제신보》 1950년 10월 1일자 기사 「소위 진영살인사건 진상, 애국자 모략살해로 판명」이란 제목의 김종원 계엄사령관 발표문을 함께 읽으면 방문한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선생의 신앙에세이집의 소제목 ‘죽음에 관한 생각들’도 곁들여 읽으면 삶의 여정에 위기의 순간마다 함께하셨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부산을 떠나 학교에 도착했을 때 여름방학 오후라 학교는 비어있었고, 학교에는 교장 사모(오중은)와 후에 황광은 목사의 사모가 된 여선생(김유선)과 그 친구(김성숙)도 있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신문에 큰 기사가 실렸다. 어제 새벽녘에 진영과 가까운 낙동강 변에서 여러 명의 친공분자가 총살되었는데, 강성갑 교장도 처형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였다(김형석,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72).”

 

“6.25사변 발생 후 시국의 급박함을 기화(奇貨)로 우익진영의 중진인 진영읍 한얼중학교 교장 강성갑씨, 진영읍 과수업자 최갑시씨를 무리하게 좌익으로 몰아 거(去) 7월 27일경 읍사무소 2층에 모여 강성갑, 최갑시 양씨를 총살할 것을 공모, 수단과 시기는 지서장이 책임질 것을 결정하고 8월 1일 24시경 전기 피해자를 낙동강 변에 새끼로 묶어 납치하여 카빈과 M1 총을 난사. 강성갑씨는 즉사하였으나 최갑시씨는 좌대퇴부에 관통 총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피신하였는데, 부산지구 헌병대는 사건의 보고를 듣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국제신보》, 1950. 10. 1).”

 

김형석 교수가 한얼중학교를 방문한 날짜는 위 앞의 글과 김종원 계엄사령관 발표문을 함께 읽어보면 강 교장이 납치된 8월 1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8월 1일 밤은 강 교장이 납치되어 자정이 지난 시점 수산교 다리 밑에서 순교한 날이다. 김형석 교수는 앞서 소개한 에세이집의 소제목 ‘죽음에 관한 생각들’ 이란 글에 선생이 태어나 겪은 여러 죽음의 고비를 얘기하면서 그때마다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다. 그중 한얼중학교를 방문해 교내 위치한 강 교장 사택에서 하룻밤 주무시던 밤 수백 명의 양민이 구금 학살되고 강 교장도 순교할 즈음 김형석 교수 본인이 직접 경험한 신비한 체험을 얘기하고 있다.

 
“늦은 밤에 나 혼자 잠자리를 준비하고 잠들었다. 이른 새벽이었다. 깊이 잠들어 있는데 꿈에 내 막내 여동생인 동석이가 나타났다. 황급히, ‘오빠! 왜 여기에 오셨어요. 꿈에서 깨는 즉시 지체 말고 떠나세요’라고 또렷이 경고를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는 대로 옷을 챙겨입고 들고 왔던 책과 노트를 봉투에 넣어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밝기 전 새벽이었다. ...사모(오중은)가 곧 조반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식사를 들고 가라고 청했다. 나는 여동생이 지체 말고 떠나라는 음성이 남아 들려오는 것 같아, 도움 될 일이 있으면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김형석,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72).”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