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치는 금과옥조 같은 가치다.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었다는 한국의 선거풍토는 가슴을 찢게 한다. 민주주의 꽃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언어는 행패와 공모자로 몰아세웠고 경찰수뇌부의 언어는 패가망신이라는 단어로 협박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투표용지보다 신뢰 위에 세워진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국민이 믿지 못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신뢰받는 선거는 결과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국민 스스로 결과를 수긍한다. 선거는 국민이 국가에 권력을 위임하는 신성한 약속이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국민들의 함성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국가는 답변할 의무가 있다. 질문을 억누르는 순간 민주주의는 권력이 되고 질문을 허용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자유가 된다. 권리와 의무는 동시적이다.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정치(神政政治)였다. 사무엘 상 8장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무엘이 나이 들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우리도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사무엘에게 요구한다.
악정(惡政)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처사다. 자신들의 죄악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였다. 그러나 회개는커녕 이방인들처럼 왕을 세워 자신들을 다스리게 해 달라는 억지를 부렸다. 책임전가에 익숙해진 아담과 하와의 후손 다운 민낯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진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랬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어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 그날에 너희가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 하시리라”
신정정치를 버리고 왕정정치를 택한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다. 왕정정치의 두 갈래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표적이다. 공산주의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도 부정이 만연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6.3지방선거는 세계적 표본이 될 상황이다.
성경은 “정직한 거울은 여호와의 것이요”(잠 16;11)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공정을 먼저 보신다. 공정이 무너지면 공동체의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는 자리 역시 그 질문 앞에 놓여 있다. 과연 우리의 선거 꽃은 제대로 피고 있는가.
완전무결한 정치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 하셔야만 가능하다. 천국에서나 온전히 이루어질 문제다. 악이 득세하는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민주주의의 꽃을 가꾸는 올바른 지도자를 찾고 계신다. 그 일꾼야말로 선거에 당선된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억만 배 더 많은 영·육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