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조찬설교
데살로니가 교회같이
김종준 목사
경남성시화 상임회장
홍대교회
또 너희는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6-8
초대교회 중에 자랑할 만한 교회를 꼽으라고 한다면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를 들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지도를 받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를 잘 감당한 교회였다. 그리고 또 한 교회를 더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선정하고 싶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충분히 그럴만 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설립한 교회이다. 빌립보 지역에서 선교를 마치고 그 다음으로 간 곳이 데살로니가 지역이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기간은 겨우 3주간이다. 유대인들의 심한 방해로 인해 야반도주하듯 베뢰아로 가야 했을 정도로 바울에게 있어서 참 아쉬운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였다. 그랬는데 그곳에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져 나갔고 자기들도 환난 중에 있으면서도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돕기 위해 힘에 지나도록 넘치는 연보를 해 줄 만큼 훌륭한 교회로 세워져 가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주의 말씀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믿음이다(마태복음16:18). 예수님이 주님이시오 그리스도라는 고백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로마서10:17). 데살로니가 교회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도 바울로부터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받았고(5),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랑의 수고를 하게 되고, 소망의 인내를 가지게 된것이다.(3) 그리고 그런 소문이 각처로 퍼져 나간 것이다.
둘째, 바른 신앙의 바른 본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육은 도제교육과 같다. 스승이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것을 제자가 곁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도제교육이다. 예수님이 이 교육의 모본을 보이셨다. 제자들을 3년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셨다. 마지막에는 발을 씻겨 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친히 보이시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13:14-15)고 하셨다.
전도자는 도제의 스승과 같다. 누구의 전도를 받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도 정해진다. 자기를 전도한 사람의 신앙을 본받기 때문이다. 만약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본받았다면 자기들도 전도를 방해하고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었을 것이지만 다행히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6), 즉 환난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바울 일행과 주를 본받았다.(6) 그러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런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환난 때문이다.
나는 농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비료와 제초제의 효능을 잘 안다. 비료는 잘 성장하게 하고 제초제는 죽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제초제는 뿌리고 나면 시들시들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
신앙에도 비료와 제초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제초제와 같은 것은 풍요이다. 이사야 시대를 보라. 아하스는 16년을, 히스기야는 29년을, 므낫세는 55년을 통치했다. 그 전쟁의 시대에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말이다. 당시 남유다는 겉은 화려했다. 성전은 제사에 바빴고 거리에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겉은 번영했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히스기야는 개혁을 시도했지만 그 시대를 향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외쳤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는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 ’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의 비료는 환난이다. 신앙의 기초는 반석, 즉 복음위에 세워지지만 그 위에 세워지는 신앙생활의 집은 볼로써 시험하신다고 했다(고린도전서 3:13-14). 이 불이 환난이다. 로마서 5장 3절에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다. 한여름 뙤약볕이 고통스럽지만, 그 더위로 인해 곡식이 자라고 과일이 익어가는 것 같이, 환난이 고통스럽겠지만 그 환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의 집이 정금같은 믿음의 집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 6절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하신다. 환난 가운데 그들이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꽃을 피워 사방에 향기를 날린 이유다.
사람들은 지금이 고난의 때라고 한다. 교회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목사가 구속이 되고, 하나님이 유일신이라고 하면, 예수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하면,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야 하다고 하면, 이단을 이단이라고 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고난 중에 가장 큰 고난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다.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위해 울어야 할 때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복음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가 당할 고난은 비료가 되어 데살로니가 교회같이 세계에 소문나는 교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