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말씀과 동행

경남성시화 조찬기도회 설교 - 진병진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1:34 수정 2026.01.15 11:34

주인이 쓰는 그릇
진병진 목사

진병진 목사
진병진 목사
6월 6일 조찬설교
주인이 쓰는 그릇
진병진 목사
경남성시화 공동본부장
창원 선장교회 담임

디모데후서 2장 20~26절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귀한 일을 하다가 귀하게 쓰임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 원할 것이다. 바울도 영적 아들인 데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길 바랬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인에게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다. 큰 집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 그릇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그릇이 있지만 주인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기도 하지만 천하게 쓰임을 받기도 한다. 그릇에 대한 말씀은 로마서 9장에 잘 기록하고 있는데 이 그릇들은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 만들었다. 그래서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직접 당신이 빚으신 것이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으려면 금그릇이 되거나 은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흙수저인지 금수저인지 참 논란이 많았다. 내가 흙수저인 것 때문에 억울해 하거나 비통해 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은 금으로 만들었느냐? 은으로 만들어 졌느냐? 재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겼느냐?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 바쁘게 다닌다고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일까? 오늘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은 어떤 그릇인지 말씀을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되려면,
1.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금그릇이라도 그 그릇에 오물이 묻어 있거나 담겨 있다면 그대로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큰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다. 큰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 질그릇 등 아주 다양한 그릇들이 있듯이 교회에는 아주 다양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그릇들이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인지 아니면, 금그릇, 은그릇이지만 장식대에 진열대 장식용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귀하게 쓰이는 그릇의 특징이 있다. 21절 상반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자신을 깨끗케 하면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 깨끗하다는 말은 그릇의 재료가 금이냐 은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함이 귀천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깨끗케 하는 자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거룩함을 따라야 한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재물의 첫번째 요소가 거룩한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자신을 먼저 정결하게 깨끗하게 한 것아다. 그래서 민수기 19장 2절에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흠없고 온전한 재물을 번제로 바쳤던 것이다. 오늘날 깨끗하게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방법이 무엇인가?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의인이 될수 없고 거룩하게 될 수 없다. 하지만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가 깨끗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 피로 정결케 되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인이 되어 살아갈 때에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사해 주심으로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새롭게 창조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될까?
2.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 살아야 한다.
21절 중반절에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주인에게는 금그릇, 은그릇, 토기그릇, 유리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길쭉한 그릇, 둥근 그릇, 각진 그릇 등 다양한 그릇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릇을 사용할지 저 그릇을 사용할 지 그것은 주인의 마음이다. 금그릇이지만 주인의 쓰임에 한번도 부름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주인에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 살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합당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구원받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저급한 신앙이 아니라 모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합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한 도구가 되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날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방향성을 잘 정하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그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라고 부르셨다. 또한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한 자, 주를 위해 살게 하기 부르셨으니 이젠 삶의 목표도 방향도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되려면?
3. 선한 일에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 한다.
21절 하반절에 "모든 선한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선한 일에 준비 된 그릇이란 어떤 그릇일까? 선한 일을 행할 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유익을 끼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릇은 주인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 내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나는 혹시 유익 때문에 나의 만족 때문에 신앙생활하고 사역을 하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 볼 때가 있다. 준비된 그릇은 나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웃에게 빛을 비추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 나의 뒷 모습을 돌아 보았을 때에 이런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주인은 금 그릇이냐 은그릇이냐? 질그릇이나? 재질에 상관 없이 주인이 사용할수 있도록 자신을 깨끗하게 비워 두고 주인의 손만 기다리고 있는 그릇이 준비된 그릇이다. 준비된 그릇의 기본적인 조건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것이다(22절). "피하라"는 말은 벗어 나라 탈출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보편적인 욕구들을 포함하는 말인데 성적 욕구나 명예욕이나 자만심이나 쾌락이나 권력이나 소유욕에 대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으로 이것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22절 하반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자가 되어라는 것이다. "따르다"는 것을 좇아가라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합한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이다. 사랑은 원수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화평은 그리스도인들 간에 서로 완전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서로 부족해도 모자라도 이해하고 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말씀에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평화를 위해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준비된 그릇이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에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관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