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조찬설교
그들의 믿음
오구식 목사
서울장신대학교 이사장
마산 성은교회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장 2절
구원은 믿음으로, 능력도 믿음으로 즉 크리스천에게 힘과 능력은 오직 믿음입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고 그 믿음이 죽음을 보지않고 승천하게 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11:6). 믿음에는 에녹처럼 ‘그가 계신 것’을 믿는 구원받는 은혜적인 믿음이 있습니다(로마서1:17). 그리고 또 하나의 믿음은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은사적인 믿음이 있습니다(고린도전서12:3). 구원은 반드시 본인의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상과 면류관과 축복도 역시 본인의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성서적입니다(요한복음3:16). 그런데 본인의 믿음으로 구원받고 상 받는 에녹과 같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또한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는 ‘그들의 믿음(저들의 믿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는 예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능력도 건강도 그리고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본인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들 것에 들고 예수님께로 찾아왔던 그 동료들의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2:5). 그러면 병이 든 백부장의 종(누가복음7장), 죽은 야이로의 딸(마가복음5장), 죽은 나사로(요한복음11장), 죽은 도르가(사도행전9장), 그리고 졸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사도행전20장) 등이 다시 고침을 받고 또 살아난 것은 과연 누구의 믿음이었습니까? 본인의 믿음입니까?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 무슨 믿음이 있습니까? 이들이 살아난 것은 야이로의 딸은 그의 아버지의 믿음, 백부장의 종은 그의 주인 백부장의 믿음, 나사로는 그의 누이들의 믿음, 도르가는 베드로의 믿음, 그리고 유두고는 바울의 믿음, ‘그들의 믿음’입니다.
6.25 동란 후에 유엔군의 보고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라로서 존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과 질병과 무질서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오늘의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서, 또 복음을 전하는 선교대국으로서, 그리고 학비 문제가 해결되고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안전한 치안과 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대양 바다에 떠 있는 대형선박의 약 45%가 한국에서 만들어졌소, 이슬람권 즉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핸드폰 약 45%가 한산산이며, 세계 1등 제품이 무려 151 종류가 한국산 이라는 것은 우연일까요? 당연한 것일까요? 아니면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 그런가요? 그것도 아니면 지금 젊은 세대들의 희생과 헌신의 댓가의 결과였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믿음이었을까요?
성경에 그 답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엄청난 죄를 범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 나라가 갈라지지 않는 것은 그의 특별한 믿음과 통치력인가요? 그리고 패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다윗 왕의 왕자의 대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것은 그의 공로요 그의 믿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솔로몬의 생전에 나라가 둘로 쪼개지지 않은 것은 그의 아비 다윗이 심은 것 때문이고(열왕기상 11:12, 다윗을 위하여) 므비보셋이 왕자의 대우를 받은 것은 그의 아버지 요나단의 공로와 헌신 때문이었습니다(사무엘하9:1).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의 아버지의 믿음, 곧 그들의 믿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유와 평화의 대한민국이 된 것과 복음의 선진국인 한국교회가 된 것, 그리고 복지국가가 된 것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도 아니고 지금 세대들의 헌신과 희생도 아닙니다. 오늘의 자유와 평화의 대한민국이 된 것은 4,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의 수고와 노고와 헌신과 희생, 그리고 순교, 즉 ‘그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순교와 수고와 노고와 희생과 헌신, 즉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믿음’의 열매였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 동료, 후배 목사님, 장로님!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 보혈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영생 복락을 얻었고 구원을 얻은 것이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의 대한민국과 오대양 육대주에 복음을 전하는 한국교회와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선교사들과 미국을 위시한 우방 국가들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과 헌신과 수고의 결과였습니다. 즉 ‘그들의 믿음’이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또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는데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살리고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고 세우는데 쓰임을 받는 한 알의 밀알, 곧 ‘그들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이 지역의 지도자로서 세상을 탓하고 성도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살리고 세우는데 헌신하고 희생하는, 주님이 말씀하신 ‘그들의 믿음’이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능력도 믿음도 없는 중풍 병자 같이 방황하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헌신과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며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마다 기도하는 경남성시화의 믿음이 즉 ‘그들의 믿음’이 되어 우리 경남이 복음화가 거룩하고 깨끗하고 행복한 성시화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