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의 무속 신앙에 대한 기고에서 논한 대로 무속 신앙의 의례와 신앙 체계는 우리 한국에만 해도 그 유래의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먼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이러한 일은 영적인 면에서는 너무나도 잘못된 문화유산을 현대까지 우리에게 남기게 되었다. 지금은 고도화된 문명의 발달로 무속 신앙이 표면적으로는 다소 약화 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의 올바른 신앙과 영성의 면에서는 올바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향을 받아서 더 잘못된 기복신앙으로 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호에서는 한국적인 무속 신앙의 근대와 현대의 상황을 논하고자 한다.
2. 조선시대와 그 이후의 무속 신앙
앞선 기고에서 논한 적이 있지만, 유래를 알 수 없는 한반도의 무속 신앙은 고려시대까지 불교, 도교와 혼합종교 형식으로 계속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유학(儒學)이 사상적 기본이 되는 관계로 무속 신앙은 멸시되고 무당의 신분도 급락했다. 이런 일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었고,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북한은 공산화로 무속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강력하게 근절시켰고, 남한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미신 타파 운동'으로 경계했다. 하지만 음성적으로는 사회적인 불안 속에서 계속 더 활성화되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3. 무속 신앙의 현대적 의미
앞에서 기술한 대로 무속 신앙은 현대의 과학 기술을 통한 문명과 지성의 발달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 그 영향력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내면과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현대의 무속 신앙은 지금까지의 비합리적인 무속 행위의 차원을 넘어서 전통문화의 탈을 쓰고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수단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깊게 침투하고 있으며, 잘못된 영적인 세계와의 연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중에는 신경학적 접근도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면 다음과 같다.
4. 현대의 신경학적 접근
현대에 와서 무속 신앙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는 신경학적 접근이다. 이는 무속적인 체험을 뇌 과학이 주장하는 뇌의 기능과 연관을 지어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측두엽 간질 환자들이 경험하는 환각이나 신비적 체험은 지난 호에서 논한 무속의 신비 현상 중의 하나인 엑스터시(Ecstasy) 현상의 일종인 트랜스(Trans) 상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시도와 주장은 무속의 기원을 생물학적,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속 신앙을 과학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려 신의 영역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하며,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와 불안감으로 오는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고 자기 성찰을 돕는 방법들로 연구하고 있다.
5. 현대의 무속 신앙과 전통적 문화와의 교류와 융합
현대 무속 신앙의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무속과 다른 영적 전통 간의 교류와 융합이다. 세계화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문화권의 무속적인 전통들이 서로 접촉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작용으로 무속 신앙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전통적인 무속 신앙을 재해석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의 심리학과 동양의 명상 수행이 결합 된 형태의 무속 프로그램들이 T.V나 유튜브를 통하여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무속 신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며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6. 결론 및 제언
이상으로 볼 때 무속 신앙의 전수와 확장을 시도하는 자들의 관점에서는 아주 생산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다. 그 이유는 이렇게 되면 무속 신앙은 지금보다 더 상업화될 것이며, 본질보다는 인간의 이기주의적 도구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예를 들면 일부 매체들의 무속적 프로그램들은 이미 영적 체험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무속 신앙의 현대적 시도는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어차피 무속이나 우리의 신앙은 영적인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무속이 훨씬 더 현상적이고 신비롭고 현혹적이다. 반면에, 우리는 영적인 현상을 터부시하고 애써 무시하며, 차원이 낮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 결과로 신앙의 합리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영성적인 면은 너무 약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이런 기고를 계속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어떤 영성 단체의 구호를 제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성경적이며 올바르고 강력한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한국과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자.” 이 구호대로 우리에겐 올바른 모든 영성적 요소들을 하나님이 이미 다 갖추게 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음으로서 현대화를 꿈꾸는 무속 신앙에 그 영역을 내어주는 불행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