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무당인 나를 찾아와서 점을 치는 자들 중에 40%는 기독교인이었다.” 이 충격적인 말은 유명 무당으로 있다가 하나님을 믿은 심선미 집사(부산 제2영도교회)의 간증의 내용이다. 또 2023년 12월 14일자 국민일보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기독 청년 인식 조사에서 ‘명상이나 요가’(45.7%) ‘점 사주 타로’(45.4%)를 경험했다고 했다.
이러한 수치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직까지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의 일부는 기복신앙, 특히 무속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이러한 기복신앙에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계속 사회적인 불안 속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견해로는 먼저 이런 기복신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교회 안의 일반적인 신앙행위조차도 무조건 기복신앙이다라고 매도함으로서 맹목적 기피현상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기복신앙의 근원이 되는 무교(shamanism)에 대해서 계속 논하고자 한다.
II. 기복신앙의 근원이 되는 무교(巫敎: shamanism)는 무엇인가?
1. 사전적 의미와 유래: 국어사전에는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토속신앙’이라 했고, 위키백과에 의하면, 무교는 샤머니즘(영어: shamanism)으로 신적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무당(巫堂), 곧 샤먼(shaman)을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이며, 샤먼은 이상 심리상태에서 신령이나 정령 등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교류하면서 예언, 탁선, 복점, 치병, 제의 등을 행하여 샤머니즘 신앙의 중심이 된다고 했다. 또한 이 말은 퉁구스계 족에서 주술사를 의미하는 사만(Saman, saman)과 사문(沙門)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시라마나(Sramana)나 팔리어의 사마나(samana), 페르시아어의 셰멘(shemen, 우상), 중국에서는 한자에서 사당을 의미하는 사(祠)와 무(巫, 여성) 및 격(覡, 남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를 볼 때 이는 각기 다른 말이 아니라 하나의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2. 신앙적인 유래: 필자는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면서 무교의 근원과 유래를 밝히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현재까지는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신학에서는 천지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지만(차후에 논할 것임), 일반적으로는 그 유래를 선사시대부터라고는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결과적으로 무속 신앙의 유래는 언제부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유추해서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신앙의 시작 요인: 앞에서 말한 대로 이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로 선사시대(약 3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벽화에 새겨진 주술적 이미지들이나 신석기 시대의 신상이나 제사 시의 기구들의 발견을 통해서 유추하고 있다. 이는 주로 해달별 같은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이나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죽음과 질병, 각종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했고, 이러한 신앙적 요인이 샤머니즘의 시작의 토대를 형성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신적인 개념인 영혼과 정령이 있다고 믿으면서 숭배했고, 인간과 신을 중재하는 샤먼(무당)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2) 발달 과정: 가장 먼저는 원시 수렵 사회에서 동물과의 교감이나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다음은 농경 사회로 전환되면서 농업과 관련된 풍요를 위해 신에게 기원하는 의례와 제사가 행해졌다. 예를 들면, 무생물 숭배로는 천상(天象)숭배, 암석(巖石), 산(山)과 물(川), 불(火) 숭배 등이다. 생물 숭배로는 식물과 동물 숭배 등이 있으며, 특히 동물 숭배는 부족의 수호자로 섬기는 토템(totem) 신앙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신앙의 행위를 위해서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례와 제사를 위해 중재자가 필요했고, 이런 역할 담당자가 바로 무당(샤먼)이었다. 또한 이들은 단순히 영적인 중재자를 넘어 사회의 지도자, 치유자, 예언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나중에는 이들이 고대 국가의 형태였던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에서 제사장과 통치자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는 나중에 논하겠지만 우리나라의 고조선 시대의 단군신화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IV. 맺는말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기복신앙의 모체인 무교는 그 유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극히 원시적인 종교 형태이며, 그 이후에 일어난 거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끼쳤다. 불교, 유교, 도교, 특히 우리 한국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도 실제로는 무속적인 내용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논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은 기복신앙은 분명히 배격되어야 될 잘못된 믿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고 비판하는 기복신앙에는 오해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올바른 기복신앙에 대한 상식과 영적 분별이기 때문에 이런 면으로 배전의 노력을 다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