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칼럼

교회에서 출석1천명 교인이 되기까지 - 박석환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5:12 수정 2026.01.15 15:12

교회 개척에서 출석1000명(중형교회)교인이 되기까지
늦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다
박석환 목사
장유소금과빛교회

성도들이 소명 받아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찾는 경우가 크게 두 분류가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신학대학을 선택하여 목회자의 길을 일찍부터 준비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일반대학을 졸업하여 전공에 따라 직장 생활하다가 조금 늦게 신학대학원을 찾는 경우이다. 어느 길이 현명한지 하나님만 아시지만 사역에 장단점이 있다. 오로지 신학의 길만 선택한 사람들은 대학 시절부터 교회를 섬기며 교회문화에 익숙하여 신학의 학문적 깊이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일반대학을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신학교를 간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고, 교인들을 이해하는 사고(思考)의 폭이 넓을 것이다. 필자는 일반대학을 나와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가 늦게 소명 받아 신학교를 찾은 경우이다. 더 구체적으로 해양대학을 나와서 외항선을 타고 선원(船員)으로 선박(船舶) 생활을 8년간 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 전 세계 약 40개국을 다니면 일찍부터 해외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선원(船員)의 직업과 신학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도마....등 5명이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던 어부였다. 또 한 갈릴리 바다에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복음 전도자로 소명을 주셨다.
성경에 바다를 배경으로 영적교훈을 말씀하는 경우가 참 많이 나온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107편)
아무리 현대화된 대형 선박이라 할지라도 태풍 같은 큰 파도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필자가 탔던 배는 약 5만톤(Ton)으로 길이300m, 배 안에 엘리베이트와 풀장이 있는 대형 선박이었지만 태풍 앞에서 추풍의 낙엽 같았다. 이럴 때 무신론자(無神論者)는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선원들은 자신이 믿는 신(神)에게 안전항해를 위해 기도한다.
필자는 배를 타면서 동료 선원들에게 전도도 하고 주일이 되면 선박교회를 세워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사실 선박의 특수성 때문에 항해를 하면 선원들은 주일예배를 지키기 어렵다. 선박이 출항하면 보통 15일-20일 정도 항해를 계속하는데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3교대 당직 근무를 서게 된다. 이럴 때 주일날 당직 근무가 없는 선원들은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다. 마치 구역예배와 같은 분위기로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이 일을 위해 한국 선원선교회에서 선박선교사로 훈련하고 설교 테이프와 신앙 서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뒤돌아보면 승선생활 할 때 정말 간절히 기도하였고, 성경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필자는 약 8년간의 승선 생활을 마치고 육상 근무를 위해서 잠시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복음 선교선 한나호Ⅰ(300톤)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를 통해서 해외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인데, 선박을 운영할 전문사역자를 긴급하게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평신도 전문 선박선교사로 약 5년간 봉사하게 되었다. 몇 년 뒤에는 복음 선교선 한나호Ⅱ(1800톤)를 구입하여 사역 활동 반경을 넓히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나라들과 남태평양 마이크로네시아의 사이판, 팔라우, 얍...등등 작은 섬들과 항구가 있는 곳이면 입항하여 의료와 문화, 복음 사역을 하였다. 지금은 복음 선교선 한나호를 매각하고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육지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필자는 평신도 선박선교사 사역을 하다가 평신도로서 사역의 한계를 느끼고 좀 더 큰 비전으로 고려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 동기생들 중에서는 비교적 나이가 약10살 정도 많은 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기 목사님들 세계에서 형님으로 통했다. 형님이라는 호칭이 교회에서 부교역자로서 사역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선임 부목사님들이 신임 전도사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임목사님과 나이 차이가 별로 많지 않았다. 전도사로서 다양한 훈련을 받고 싶었지만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는 교회가 많았다. 소위 가고 싶은 교회는 많은데 오라고 하는 교회는 많지 않았다.
필자가 목회자가 되기 전에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선원생활을 했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그때 그 시절이 정말 순수하게 기도 많이 하였고, 성경을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오대양을 누비며 바다 생활을 했던 경험과 전 세계를 다니며 해외 견문을 넓히게 된 것이 나중에 목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오늘의 개척교회와 교회 성장이 그동안 다양한 훈련과 연단 그리고 헌신의 열매라고 본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허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9)




















교회 개척에서 출석1000명(중형교회)교인이 되기까지
4. 교회개척을 시작하다 2025년 4월 21일 장유소금과빛교회 박석환 목사

부산 강서의 D교회에서 부교역자로 6년간 사역하였다. 6년 동안 한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니 부교역자 생활이 너무 편하고 쉬웠다. 그때 소원은 평생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부교역자로 은퇴하고 싶었다. 사실은 나름대로 맡은 부서를 부흥시켰고, 교인들로부터 인정도 받았기 때문에 계속 사역하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임해야만 하는 사건이 생겼다. 필자가 부목사로 6년간 섬길 때 신임 강도사가 들어왔다. 사역에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강도사의 언행이 시정잡배(市井雜輩)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발생하였기 너무 충격적이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담임목사님께 조용히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 느낌이 이제 D교회를 사임해야 할 때가 온 것이구나. 선배 목사님에게 사실을 상담했더니 조용히 사임하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실 것이라 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과 교회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사임했다.

40세 나이에 갈 곳이 없어서 개척교회를 준비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개척교회, 꿈에도 생각지 않은 개척교회를 하겠다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다. 아는 것도 준비된 것도 없었다. 지금은 총회 전도부에서 개척교회 세미나를 개최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재정 지원도 해주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전 재산이라고 할수 있는 아파트를 팔아 개척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또 아이들이 졸업할 때 찾게 되는 초등학교 저축 통장을 미리 해약하여 개척교회 준비에 보태기로 했다. 그리고 약 2달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원, 세미나, 작정기도...다양하게 준비했다.

제일 먼저 개척교회는 아파트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일이 되면 우리집 아이들이 이웃교회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자기 친구들 5명을 데리고 왔다. 꼬맹이들 5명과 함께 개척교회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 아이들 한 사람, 한사람이 너무나 귀중하게 보였다. 이때부터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달기 시작했다. 나중에 교회학교 아이들이 300명 이상 된 것도 이때 훈련을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개척교회를 하고자 하는가? 갈 곳이 없어서 개척교회를 하는가?
나는 앞으로 이런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개척교회 목회 비젼을 작성하여 만나는 지인들에게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척교회 목사는 서로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잘 안 만나 준다. 그런데 비젼을 듣고 제일 먼저 해양대학 동기인 친구가 감동받아 이스타나 승용차 한 대 기증해 주었다. 이때부터 벳세다 광야에서 일어난 5병2어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대책없이 시작했지만 많은 분들이 물질과 재능기부로 동참하였다.

개척교회는 김해시 장유면 부곡리 691번지 였다. IMF 이후 부도난 공장 건물을 임대하여 대지850평, 건평150평으로 시작했다. 공장 건물을 예배당 용도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돈을 발라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때 다양한 분야에서 돕는 자들이 찾아왔다. 천장 인테리어, 바닥 타일, 벽면 페인트, 전기공사, 주방공사...모두 다 자원 봉사자들이었다. 심지어 복음 선교선 한나호Ⅱ 선교사님들이 한달 동안 함께 합숙하며 공사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동남아 더운 지방의 사람들인데 한국의 추운 겨울 1월과 2월에 봉사한 것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중에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초청 행사를 하려 했는데 모두 다 사양하고 오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보내주신 것 같다. 정말로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고백하게 되었다.

드리어 2000년 2월 28일 개척교회 설립 예배를 드렸다. 창립 멤버는 가족(5명)으로 시작하였다. 130평 넓은 예배당 공간에 가족 5명(사모, 초4년, 1년, 5살)이 앉으니 썰렁하였다. 그때 큰아이 초4년 학생이 예배 반주를 하였고, 교인이 없다고 몇 주 동안 친척이 렌탈(rental) 교인으로 참여해 주었다. 또 감동적인 것은 개척교회 예배만 드리는 교인으로 통영에 정박해 있던 복음선교선 한나호 선교사님들 약 10명이 매주 시외버스를 타고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 사상 터미널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매 주일 그분들을 모시고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너무 행복했다. 비록 렌탈(rental) 교인이었지만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었다. 아마 전통교회 목사는 한 영혼의 가치를 이처럼 간절하게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교인이 없으니 새벽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혼자 밤 늦도록 기도하다가 교회 쪽방에서 잠을 자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번은 새벽에 밖에서 교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새벽 기도하려고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이다. 목사로서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때 들리는 음성이 주님이 새벽 기도를 시작하라는 음성으로 들렸다. 그 후에 한 번도 새벽기도를 쉬어 본 적이 없다. 주일날 어른 출석 40명일 때 새벽기도 교인이 20명이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확신한다. (마16: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