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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북한에서의 주일 선거와 기독교탄압 - 이상규 교수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5:18 수정 2026.01.15 15:18

38. 북한에서의 주일 선거와 기독교탄압
이상규 교수
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

1946년 3·1절 기념예배 사건 이후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중요한 행사는 고의적으로 주일에 실시했다. 주일 예배를 방해하기 위한 의도였다. 주일행사를 실시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참석을 강요하고 이를 불응할 때는 탄압을 가했다. 심지어는 교회당에서 정치 강연을 요구하는 등 계획적인 탄압을 자행하였다. 1946년 6월 5일, 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서기장 강양욱의 이름으로 전국 면, 군, 시, 도, 인민위원회 위원선출을 위한 투표를 11월 3일 주일 시행한다고 공고했다. 의도적인 주일 선거 계획으로 교계의 반응을 시험하고 교계 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저의였다. 이렇게 하자 북한의 교회는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섰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선거에 임한다는 것은 우선 신앙 양심상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북오도 연합노회가 10월 20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모여 대책을 숙의한 끝에 주일선거실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재고를 바라는 진정서를 내기로 하고 김진수, 김철훈, 김화식, 이기혁, 이유택, 지형순, 한덕교 목사 등 7명을 위원으로 선출하였다. 이들은 이북5도연합노회 명의로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김일성정권에 제출하였다.

결의문
북한의 이천교회와 삼십만 기독교신도들은 신앙의 수호와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다음 오 조항의 교회행정의 원칙과 신앙생활의 규범을 결정 실시 중에 있사온 바 이에 귀 위원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一. 성수 주일을 생명으로 하는 교회는 주일에는 예배 이외의 여하한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二. 정치와 종교는 이를 엄격히 구분한다.
三. 교회당의 신성을 확보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의무요 권리이다. 예배당은 예배 이외에는 여하한 경우도 이를 사용함을 금지한다.
四. 현직 교역자로서 정계에 종사할 경우에는 교직을 사면해야 한다.
五. 교회는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확보한다.

이 결의문은 북한정권의 기독교에 대한 간섭과 탄압을 저지하려는 것인 동시에 주일 선거에 대한 불참 의사의 표현이었다. 이북5도연합노회가 강경한 의지를 표현하자 탄압만으로는 성사되지 못할 것을 깨닫고 김일성의 비서이자 인민위원회 서기장인 강양욱을 시켜 교회분열정책으로 소위 ‘기독교도연맹’을 조직토록 지시했다. 이 연맹의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친공산주의적인 어용조직이었다. 기독교도연맹은 주일선거 실시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 우리는 김일성 정부를 절대 지지한다. 2. 우리는 남한정권을 인정치 않는다. 3. 교회는 민중의 지도자가 될 것을 공약한다. 4. 그러므로 교회는 선거에 솔선참가 한다.” 이 성명서만 보더라도 기독교도연맹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공산정권은 이 4개항의 결의문을 각 교회에서 교인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다. 그러나 평안남북도의 교회들은 불응했다.
이에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유력한 목사 10여 명을 불러 모우고 인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를 반대하는 행위를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북오도연합노회는 이를 받아드릴수 없었다. 일부 교회들은 11월 4일 월요일 새벽 1시에 투표를 하게 해달라고 건의하였고, 진남포의 기독교도들은 새벽 0시 5분에 투표하겠다고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평원교회 이진호 목사는 이북5도연합노회의 주일선거를 반대하는 회의에 참석한 후 주일선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20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이때로부터 기독교도연맹을 통한 교회의 탄압이 노골화되었다. 북한교회는 순교를 각오하고 다수의 신자들이 11월 3일 선거에 불참했다. 당시 기독교인들 전체가 선거에 불참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목회자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신도들을 이끌고 투표장으로 가기도 했다. 면종복배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공산당의 술책은 선거불참을 명분으로 기독교회를 탄압하는 것이었다. 곧 예배 방해가 시작되었고, 목사의 설교는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교역자들은 연달아 투옥되는 등 수난이 뒤따랐다. 예배의 자유를 침해했던 슬픈 역사였다. 지하철, 백화점, 시장이나 사업처, 그리고 천주교당은 예외로 하고 오직 개신교회에 대해서만 감염을 핑계로 예배 인원을 최소화하는 등 예배의 자유를 방해했던 문재인 정권의 제한조치 또한 슬픈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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