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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크리스천인문학] 『향연』 플라톤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20 14:21 수정 2026.01.20 14:21

현외성 교수<br>마산중앙감리교회 원로장로<br>전 경남대 교수<br>창신대 석좌교수<br>현재 경남평생교육연구원 원장
현외성 교수
마산중앙감리교회 원로장로
전 경남대 교수
창신대 석좌교수
현재 경남평생교육연구원 원장
   플라톤의 저작들은 서양철학의 시작이라고 한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라 할 정도로 플라톤의 저작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만큼 플라톤의 저작들이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철학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하여 이미 숙고하면서 책을 집필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들의 일상에 있어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또 얼마나 많은가, 문학과 예술에서 사랑은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것이 인생사 아닌가?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고 사랑 때문에 치욕을 당하기도 하고 사랑으로 인하여 조국을 배반하기도 한다. 사랑으로 한 국가가 패망하고 사랑 때문에 국가가 혼란에 빠지고 사랑으로 국가가 일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사랑은 얼마나 가볍고 얼마나 세속적이고 얼마나 유치한가?
   플라톤은 이미 2,500년전 (문헌학적으로는 기원전 416년) 사랑에 대하여 에세이 혹은 산문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당시 플라톤은 그리스 내에서 탁월한 산문 작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는 말이 『향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을 문학으로 분류해야 하나 혹은 철학으로 분류해야 하는지가 쉽지 않다.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철학 보다는 문학에 가깝다고 사람들이 이미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플라톤의 철학적 사유가 깊이 드러나는 놀라운 철학책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교양과목으로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읽게 하며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플라톤은 자신이 가진 사랑에 대하여 신화학적, 희극적, 비극적, 통속적인 다양한 견해를 담아서 다양한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플라톤이 철학자로서 탁월한 점은 마치 문학책처럼 이야기 형식을 담아서 대화체 형식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고 쉽게 어려운 내용을 풀어 헤친다는 사실이다. 『향연』도 그러한데, 아테네의 비극작가 아가톤이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그 축하연을 자신의 집에서 개최하면서, 그곳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모여 사랑에 대하여 재미있게 자신들의 견해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참여자 6명이 제각기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데,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그리고 소크라테스 등이 에로스에 대하여 설명한다.
   첫 번째로 에로스에 대하여 설명한 파우사니아스의 견해에 따르면, 에로스는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는데, 평생동안 사람들에게 살아갈 원칙이나 목표로서 사랑만큼 귀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혈연이나 공직이나 부(富)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고 사랑 때문에 훌륭하게 행동하며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군대나 국가가 잘 다스려지게 되는 것 역시 사랑 때문이다. 그것은 애국심과 동료애, 우정이라는 형태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하여 스스로 대열을 이탈하여 무기를 버리는 일이 없고 차라리 죽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는 사랑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많은 영웅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었다. 대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터로 나아갔고 그 용기로 인하여 신들은 그에게 불멸의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후 사람들은 아킬레스를 명예로운 영웅으로 숭상하였다. 안중근 역시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 민족을 사랑하였으므로 의롭고 용기있게 적장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는 용기를 가졌고, 그는 죽었으나 역사와 후세 사람들에게 죽지 않고 불멸로 남았다.
   두 번째 설명자는 파우사니우스였다. 그는 에로스를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한 에로스(지상의 에로스)로 구분하여 각각의 에로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육체적인 사랑, 성적인 사랑, 일시적이고 덧없는 사랑, 세상적인 사랑, 추한 사랑인 지상의 에로스적인 사랑 보다는 천상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찬미하였다. 천상의 에로스적인 사랑은 고상하고 한결같고 더 아름다고 가치있는 것, 미덕을 사랑하여 종노릇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지혜와 미덕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의사인 에뤽시마코스가 말하였다. 그는 에로스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에로스는 동물과 식물세계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 속에 존재한다. 에로스는 인간과 신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며 영향을 끼치는 위대하고 놀라운 신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 본다면, 명의란 좋은 에로스와 나쁜 에로스를 구분하여 몸이 나쁜 에로스 보다는 좋은 에로스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의사는 몸 안의 가장 적대적인 요소들이 친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게 만들 수 있어야 명의라 할 수 있다. 의술은 전적으로 에로스 신에 의해 조종되며, 그 점에서 체육과 음악과 농업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특히 음악은 조화와 리듬에 미치는 사랑의 영향에 관한 지식이다.
   한 해를 구성하는 계절들도 이 두 종류의 에로스로 가득 차 있다. 즉 뜨거운 것과 찬 것, 마른 것과 축축한 것이 절제 있는 에로스의 영향을 받으면, 그것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적절하게 섞여 사람들과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에게 번영과 건강을 가져다주고 아무 해악도 끼치지 않는다. 반면 난폭하고 잔인한 에로스가 계절을 지배하면 큰 파멸을 안겨주며 해악을 끼친다. 그런 에로스는 식물과 동물들 사이에 역병과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가 하면 서리와 우박과 마름병을 불러 오는데, 이 모든 것이 무절제하고 무질서한 에로스가 이른바 천문학의 연구대상인 천체의 운행과 계절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성은 셋이었다고 한다. 인간이 힘과 능력이 엄청나고 자부심이 대단하여 신들마저 공격하려고 했다. 그래서 제우스와 다른 신들이 모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였다. 제우스는 장고 끝에 인간들이 계속 살아 남아 있되 못된 짓을 더는 못하도록 그들을 약하게 만들 방도를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인간들 각자를 두 쪽으로 나누어 그 힘을 약화시켜 신들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도록 했다. 그래서 사랑이란 본래의 완전한 전체에서 분리된 반쪽을 그리워하고 찾아서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에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하였다. 인류가 행복해지려면 자신과 합하여 완전을 이룰 수 있는 반쪽 사람을 찾아내고, 저마다 평생 사랑할 상대를 만나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설명은 흔히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깃들인 본질적인 설명, 사랑과 연결한 인간존재 의미를 설명하는 문학적 심리학적 철학적 이론과 저작들에 널리 깃들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성격과 특성을 가진 이성에 호감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서로의 다름이 서로를 보완하여 완성된 인간을 만들어갈 수 있고 그 결과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기심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배경을 본질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다섯 번째로 나선 연사는 비극작가 아가톤이었다. 아가톤은 에로스신은 먼저 젊다고 하며,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들 속을 거닐며 그 속에 산다고 했다. 에로스는 신과 인간들의 성격과 혼에 거처하되, 성격이 딱딱한 혼을 만나면 떠나가고, 성격이 부드러운 혼을 만나면 그곳에 거처를 정한다고 했다. 에로스는 젊고 부드러우며 형체가 유연하고 균형잡히고 우아하다고 했다. 그리고 에로스신은 정의롭고, 절제와 용기, 및 지혜에 관여한다고 했다. 특히 모든 생물의 생산과 관련하여,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에로스의 지혜 덕분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하여, 자신이 과거에 만티네이아의 여인 디오티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로스는 정령(daimon)들 중의 하나인데, 모든 정령은 신과 필멸의 존재의 중간에 있다고 했다. 정령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잔치 때 포로스(방편과 전략의 신)와 페니아(가난, 결핍의 신) 사이에서 잉태되어 탄생하였다. 바로 이러한 탄생배경 때문에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이고 그리하여 더 좋은 것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필멸의 존재가 영원히 살기를 소망함은 인간이나 동물에게도 적용되는데, 영원한 삶은 생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자신을 닮은 젊은 것을 뒤에 남김으로써 불멸한다는 설명이다. 에로스는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하여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처럼, 불멸의 명예와 명성을 위하여 삶을 불태우는 것에 관여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력을 다하여 불후의 미덕과 명성을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것은 불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인은 물론 창의적인 장인들도 포함되며,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지혜는 국가와 가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그런 지혜는 절제와 정의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랑의 발전단계는 아름다운 몸과 혼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름다운 몸과 혼을 길러주는 여러 활동과 법률 등의 아름다움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지혜의 바다, 아름다움의 바다로 나아가, 그것을 바라보며 지혜를 향한 무한한 사랑에서 아름답고 웅장한 담론과 사상을 낳게 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갑자기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늘 있는 것이어서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체로 존재하며 형상이 하나이다. 그것은 모든 아름다움에 관여하는 존재이다. 이 아름다움을 관조하며 그 아름다움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신적인 사랑을 알고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통해 에로스, 아름다움과 지혜를 말하는 내용은 플라톤 철학의 형이상학의 핵심인 ‘이데아’(Idea)를 말하는 내용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말하는 에로스, 즉 사랑이란 이성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여 생명 자체를 사랑하고 삼라만상의 질서와 원리에 깃들여 있는 사랑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끝없이 보다 아름답고 가치있는 사람과 대상을 추구하며, 상승하려는 욕구와 미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랑이 불멸을 소망하기 때문이리라. 일찌기 프로이드는 사랑의 욕구(리비도)가 승화되어 예술적 창조와 다양한 분야의 발전과 학문을 낳는, 그리하여 포괄적으로는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표현된 파우스트 박사의 끝없는 ‘상승욕구’는 인간이 가진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사랑의 마음을 극대화하여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짓고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신다고 하셨다. 사랑은 존재이유이고 근거이며 생명 자체이지 않을까?

추천도서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향연, 도서출판 숲, 2024.
플라톤 지음, 박희영 옮김, 향연, 문학과 지성사, 2013.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향연, 아카넷,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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