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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구동태 감독
경남 교회의 통합의 리더십 발휘
묘원과 기념관 건립 주체
호주 선교사 묘원 조성과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건립은 한마디로 경남과 부산 울산의 기독교 뿌리 찾기의 시작이고 결과물이었다. 이 일은 2008년 12월부터 시작된 '경남성시화 운동본부'의 창립에서 비롯되었다. 창립에는 구동태 감독과 이종승 목사(백석)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 감독은 경남 소수 교단인 감리교단의 대표로 참석해, 고신(윤희구 목사) 합동(이상렬 목사) 통합(지용수 목사) 성결(조관행 목사) 교단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실적은 지난 15년의 활동을 집약한 '경남 부산 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백서' 발간(2023.10.1.)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구 감독과 경남성시화 운동본부 임원들은 창립 이후 교회 연합과 기독교 문화 확산을 위한 각종 성회와 기도회, 연합행사에 집중하던 중 2009년 4월 맥피 선교사 묘지 이장 작업을 성시화운동본부의 사업으로 결의했고 신성용 전 이사장으로부터 부지를 기증받아 ‘호주 선교사 묘원’ 사업으로 확장했다. 묘원은 준비된 인력과 창원공원 묘원의 부지 헌신으로 발 빠르게 진행돼 5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이 사업 결실에 탄력이 붙어 데이비스 선교사가 경남 땅(지금은 부산)을 밟은 날인 10월 2일을 '경남 선교의 날'로 정하고, 이어서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사업을 시작했다. 호주를 2회에 걸쳐 방문하고 현존 선교사와 후손들을 만나 자료를 요청하고, 400여 점의 유품과 자료를 기증받아 1년 만에 완성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구 동태 감독의 경남 교계를 아우르는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승 목사
실무 총 책임을 맡아 헌신
교회참여와 헌금 모금에 탁월한 능력 발휘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의 창립과 '호주 선교사 묘원'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건립에는 이종승 목사의 추진력을 빼 놓을 수 없다. 이 목사는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경남 복음화 사업에 기획과 진행을 진두지휘했다. 호주선교사 묘원과 기념관 건립뿐만 아니라 각종 연합활동에는 교회의 참여와 자금이 필수적이다. 실무 책임자인 대표본부장을 맡아, 인력동원과 헌금모금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교회 연합 활동은 기독교 문화 확산에 필요하면서도 앞장서는 사람은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 목사는 이에 개의치 않고 '꼭 해야 할 일'이라며 앞장섰다. 호주 선교사 묘원 사업에는 비석 제작과 작업 비를 포함해서 약 8천여 만 원이 들었다. 이 자금을 이 목사는 경남의 중심적인 교회와 교계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이뤄냈다. 이 목사는 묘원 부지 기증을 설득하는 과정에, 당시 신성용 이사장에게 "공원묘원이라 하지만 실제는 공동묘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여기에 경남. 부산. 울산의 근대화에 이바지한 호주 선교사 묘원이 들어서면 명실공히 공원묘원이 될 수 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창원공원묘원은 이후 국제적으로 명성을 가지게 된 기독교 문화 공간으로, 해외에서도 방문객이 찾아오는 등 공동묘지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사업도, 호주 방문을 기획하고 현지에서 선교사와 가족들을 설득하여 이 사업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해 400여점의 유품을 모을 수 있었다. 경남교회가 이뤄 놓은 실적을 개인적인 치적이 아닌 공적 기관으로 관리하게 해야 한다며 사단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경남 성시화운동본부는 2년에 걸쳐 묘원과 기념관 사업 등에 총 11억 원의 헌금을 모아 이 사업을 완성했고, 이어서 2023년 10월에 발간한 백서와 함께 ‘경남. 부산. 울산의 기독교 뿌리 찾기’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호주 선교사 묘원의 시작은
강병도 장로로부터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 성역화 사업은 무학산 공동묘지에 있던 Mcphee 선교사의 묘지가 지주의 법적 행사로 강제 철거 당 할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이장을 추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업의 중심에는 강병도 장로가 있었다. 강 장로는 호주선교사의 경남. 부산. 울산 선교 역사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맥피 선교사 묘소도 개인적으로 관리해 왔다. 강 장로는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가 창립되고 난 후 이 일을 보고하고 대책을 호소했었다.
강 장로는 경남지방에서 순직한 호주선교사들의 묘소와 비석조차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2005. 10. 5에 창신 대학 내에 순직 선교사 여덟 분의 기념 비석을 설치하고 제막 예배를 드렸었다. 이 기념 비석을 만들기 위해 호주에 가서 자료를 수집하고, 호주 한인교회에 동참을 호소해 호주에 있는 한인 교회 8곳의 지원을 받았다. 비석 원문을 작성하고, 한국에서 20년간 선교활동을 한 John Brown 목사의 감수를 받아 설치했다. 이 비석은 호주 선교사 묘원이 조성되면서 이전함으로써 묘원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강 장로는 이 때문에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가 호주선교사 묘원 조성사업을 시작할 때 총괄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묘원 장소 결정과 환경조성, 기념비 내용, 기념비 조각 등의 역할을 맡아 아름다운 '호주 선교사 묘원'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강 장로는 이어서 진행된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사업에도 자문위원과 감수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23년 10월에는 창신 학원 관내에 '호주 선교사 기념관'을 사비로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아리마대 요셉에 비견된
신성용 창원공원묘원 전 이사장
호주 장로교 총회는 신 이사장을 일컬어 자기 소유 무덤을 예수님에게 내어준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신 이사장은 어쩌면 요셉의 영감을 받고 이 부지를 기증했는지도 모른다. 2009년 4월 맥피 선교사 묘소 이장을 휘해 창원공원묘원을 찾았던 경남 성시화 운동본부 관계자들은 문창교회가 마련한 묘지 자리를 둘러보았으나 마땅치 않아 돌아가던 중 공원묘원 중심지에 이러러 창원공원 묘원 조성의 과정을 잘 알고 있었던 성재효 장로의 제안으로 가족묘지로 쓰기 위해 비워 둔 이 부지를 요청하기로 하고 신 이사장을 만났다. 신 이사장은 이 땅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팔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성시화 임원들이 세 번째 찾아가서 간곡히 설득할 때 신성용 이사장(당시 가포교회 안수집사)이 한번 생각하며 기도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이사회에서 승인이 되었다며 만나자는 전화가 왔고 부지 문제가 해결됐다. 처음에는 100평만 사용하라고 했으나 공사를 시작하면서 이 일대(1,000평정도)를 성지로 만들자며 자진해서 확장하게 되었고, 다음해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건립 때 기념관 부지와 인근 광장까지 포함해서 3천여 평을 조건 없이 기증했다. 신 이사장은 기념관 건립 후에 화장실과 야외 기념교회 건물을 추가로 짓고, 창원시의 지원을 받아 출입구 도로 확장과 광장 포장 공사를 진행해 명실 공히 국내 최고의 선교역사 성지를 만들어냈다. 신 이사장은 이 모든 시설의 관리를 영구히 창원공원묘원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