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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신앙심으로 메세나ㆍ의정활동에서 피워낸 사랑의 금자탑(金字塔)

이학규 기자 입력 2026.02.12 10:37 수정 2026.02.12 10:37

경남교계의 리더- 조우성 장로(마산제일교회) (1)
주경야독 박사학위 받으며 만학의 꿈 이뤄
창업 후 IMF 종업원과 가족의 정으로 극복
`대한민국 의정대상`ㆍ`한국을 빛낸 인물` 선정
경남YMCA협회장 ㆍ교회부설 노인대학장 등 역임
10여년 간 예술인 지원 경남 메세나대상도 수상

조우성(趙祐成)장로 <br>前 경남도의회 부의장
조우성(趙祐成)장로
前 경남도의회 부의장
   조우성 장로 그의 고향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마을이다.
 그가 태어난 동촌마을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민간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지역이다. 마을 뒤의 산은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지맥이 있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천은 땅의 기운을 모으는 곳이다. 이 동촌마을은 산의 기운인 음(陰)과 물의 기운인 양(陽)이 합해지는 천혜의 지역이다. 이 마을에는 학자, 기업인, 정치인이 많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가 경남도의회 부의장의 지위에서 많은 일을 한 것도 이 마을의 천기(天氣)를 이어받은 것이리라.
 그의 유ㆍ소년 시절은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어렵게 공부를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성적이 아주 뛰어났다. 그 당시의 뛰어난 성적으로 도회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으나 가정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그것을 포기하고 시골 중학교에 진학해만 했다. 자신의 집에서 3km 길을 걸어가는 시골 중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중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나 자신이 희망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졸업 후 취업이 용이한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일찍부터 산업현장의 일꾼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좋은 대학에 가는 청운의 설계를 접은 것이 한(恨)으로 남았다.
 한편으로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일찍 자신의 힘으로 취업이 용이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기업에 취업해 산업의 역군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받게 되자,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받은 월급으로 만학(晩學)의 나이에 한(恨)으로 남았던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대학, 대학원 석사, 박사까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이것은 실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기업가로 첫출발한 그의 젊은 용기
 1993년에 그는 조선(造船) 관련 기업인 영광산업(주)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할 때의 시대적 상황이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자, IMF 당시 거래처의 어음부도로 인해, 60여 명의 종업원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태에 부딪쳤다. 그는 동분서주하며 회사를 살리는 일에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밀렸던 임금을 해결하고 전 직원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 직원들과의 직원들의 포용과 보실핌 등의 인간적 교감이 회사를 살리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그 기업은 조선의 선체 대형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업으로 늘 안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대형 산재사고를 당했다. 인명 사고였다. 인명사고는 그 처리가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시간 들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이 수렁의 늪에서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와 말씀을 붙잡고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했다. 더불어 성공한 기업가들의 경험을 담은 전기를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면서 그 속에서 회사 회생(回生)의 해법을 찾았다.
 그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후에 기업가에 대한 가치관을 새로 세웠다. 성공을 이루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이룬 기업가들을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그의 기업 철학은 항상 일하는 직원에 그 모든 것을 맞추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종업원이 그의 동료이자 식구라는 마음으로 대했다. 그는 특히 외국인 근로자를 대하면 그들의 아픔을 다독이었다. 타국에서 일을 찾아 한국으로 와서 땀 흘리며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따듯하게 대하며 소통하는 일터를 가꾸자고 다독이며 그들의 아픈 역경을 위로해 주었다.
 그는 따뜻한 사회적 봉사 활동과 의회 활동을 하면서도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 가정도 사랑으로 잘 다스려왔다. 자녀들의 공부, 인성, 가정의 일 등을 자상하게 이끌어왔다.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그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에게는 동고동락하는 부인(정선희권사)과 슬하에 1남 1녀가 있으며 손자 한 명과 손녀 둘이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 이러한 가정을 잘 이끌어온 것은 부인의 숨은 내조도 뒤따랐을 것이다.
 아들은 미국에서 금융학(金融學)을 전공하여 현재 서울에서 금융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고, 딸은 미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예일대 Child Study Center`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들, 딸을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걸어 온 의정(議政) 활동

 1) 경남, 마산로봇랜드 조성사업
 그가 의회에 입성하여 처음으로 안겨진 일이 <경남, 마산로봇랜드조성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선정된 <경남, 마산로봇랜드조성사업>이 표류 되어 있는 것을 파악했다. 그는 도정질문을 통해 로봇랜드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사업의 타당성 여부 및 향후, 진행 절차를 점검하자는 특위 설치를 도지사에게 제안했다.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많은 난관 끝에 오늘에 `경남, 마산로봇랜드 조성사업`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의정활동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 가운데 진행된 오늘의 마산로봇랜드의 현주소는 꽃을 피우지 못해 마냥 아쉬움으로 남는다.
 2) 2012년 3.15-9.14 (6개월)까지 경상남도 조례정비특별위원회 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활동을 통해 도청과 교육청조례 일제 정비를 통해 제정, 개별개정, 폐지, 일괄 개정을 통해 총 169건의 조례를 일제히 정비하는 의미 있는 활동 성과를 거두었다. 위와 같은 의정활동으로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대한민국의정대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3) 의정활동 중 대표적인 조례제정으로 <경상남도청년 일자리창출 지원조례>를 대표 발의해 청년들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경상남도 인성교육진흥 지원조례>를 전국 최초로 대표 발의로 제정해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성교육의 기폭제 역할을 감당했다.
 이외 수많은 조례제정 활동을 통해 `한국을 빛낸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고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4) 함안 군북에 있는 서산서원(생육신을 모시는 곳)이 오랫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는데 의정활동 당시 각고의 노력으로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받아 보조금 지원으로 보수공사를 시행하는 일을 시행할 수 있게 되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위하여 봉사한 일
 1) 1997년부터 마산 YMCA활동을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생명과 관련 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해 이사장, 경남협의회장으로 활동했다.
 2)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미래통일을 함께 꿈꾸는 세상을 주창하며 또한 `연변과학기술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며 직접 평양을 방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실체를 이해하며 탈북자에 대한 애정도 가지면서 활동하기도 했다.
 3) 어르신들을 섬기며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노인대학에 출석했다. 노인대학을 <고신>마산제일교회(담임목사 신동진)에 설치해 `7년간 마산제일노인대학 학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매년 400 여분의 어르신들을 섬겼다.
 4)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활동하는 경남종합사회복지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이웃을 돌아보는 역할도 감당하였다.
 5) 경남도의회 의정회장을 역임하면서 경남의정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6) 창원극동방송포럼회장으로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문제를 크리스천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포럼을 개최하여 시대를 깨웠다.

일생을 살면서 도움을 받은 분이나 잊을 수 없는 분은?
 그는 시골에서 전형적인 농부의 4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정직과 성실 그리고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며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슬하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새롭게 학문을 시작했지만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러한 자신을 지도해 주신 경남대학교 경영학과 `원유동` 교수님께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현재 극동방송 이사장님이신 `김장환` 목사님을 통해 섬기는 리더십( leadership)을 배웠고, 몇 차례 미국방문을 함께하면서 세계에 관해 눈을 떴으며 섬기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다. 마산무학여중ㆍ고 교장, 이사장으로 교육계에 오랫동안 몸담으셨던 서익수 이사장으로부터 교육의 중요성과 사람됨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창신대학교 설립자이면서 이사장을 역임하신 창신중ㆍ고등학교 강병도 학장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랑스런 경남메세나협회 활동
 경남메세나협회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 장이다. 지역의 예술단체와 후원기업과 매칭으로 기업은 재정적인 후원으로 예술인들은 재능으로 도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의 기회를 제공하여 경남이 문화도시의 기능을 이어가는 운동이다. 의정활동 당시 문화복지위원으로 있으면서 지역의 예술단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 기회도 있었다.
 2011년부터 `창원시윈드오케스트라` `마산여성합창단` `로람플룻앙상블`을 후원기업으로 참여했으며 이를 계기로 2016년 한국음악협회로부터 `특별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경남메세나협회로부터 개인부문 경남메세나 대상인 `2022 경남메세나대상`을 수상하는 기쁨도 가졌다. 또한 경남메세나협회 이사로도 참여했다.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어가며 공업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 한 그가 주경야독으로 박사 과정까지 이수한 열정의 노력가이다. 그는 그러한 열정으로 경남도의회 활동, 사회봉사 활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도움을 바라는 이들을 따뜻이 보살펴 주는 일을 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문화, 예술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 열정을 쏟아 우리 도민이 차원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우리경남을 행복하게, 깨끗하게, 거룩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는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우성 장로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아낌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 등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면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 우리기독자들이 받은 만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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