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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등대 - 이윤민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7.06 14:54 수정 2026.07.06 14:54

<기도와 행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2026. 07. 6. 월.

이윤민 목사<br>양산 금빛교
이윤민 목사
양산 금빛교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한 몸짓이다. 행함은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목숨 건 행동이다. 기도 없이 행하는 성도는 불량배 같은 성도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불순종하는 성도는 망나니 같은 성도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뜻을 묻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그분의 뜻을 알고도 감히 순종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새벽이 오면 교회의 불이 먼저 켜진다.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세상은 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가.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기도가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릎은 꿇었지만 세상을 향한 발걸음은 멈춰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와 삶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기도를 말하면서 언제나 순종을 함께 말씀하신다. 노아는 방주를 위해 기도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도끼를 들었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세월은 더뎠다. 그러나 노아는 하루도 망치를 내려놓지 않았다. 믿음은 손에 굳은살이 되어 나타났다.

홍해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부르짖었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형편을 바라보며 울었지만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케 했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섰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지만 손에는 물맷돌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기도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자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다. 십자가는 기도와 순종, 이 두 가지가 만나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였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기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기적을 구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적보다 먼저 사람을 부르셨다. 노아를 부르셨다. 모세를 부르셨다. 이사야를 부르셨다. 베드로를 부르셨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부르신다.

그들은 모두 기도했다. 그들은 모두 행동했다. 기도는 현실을 피하는 통로가 아니다.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 6:8)“ 기도는 바로 그 부르심에 대답하는 시간이다. 행함은 그 대답을 살아내는 시간이다.

기도는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가 아니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다. 행함은 인간의 열심이 아니다. 기도가 낳은 믿음의 열매다. 그래서 기도 없는 행함은 자기 의에 머물기 쉽고, 행함 없는 기도는 종교적 습관으로 끝나기 쉽다. 둘은 함께 있을 때 살아난다. 함께 있을 때 하나님 나라가 드러난다.

무릎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발걸음은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발걸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무릎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기도가 무릎을 꿇게 한다면 행함은 세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기도와 행함은 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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