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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음과 거둠 - 이현두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7.06 14:57 수정 2026.07.06 14:58

목회일기

이현두 목사
합천 유천교회

이현두 목사
이현두 목사
주일날, 부산 수영로교회 청년들의 단기선교 행사와 주민 초청 잔치로 떠들썩했던 하루를 은혜 가운데 마쳤다. 이튿날 월요일 아침, 주중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재촉해 텃밭으로 향했다. 마침 절기상으로도 감자를 캐야 한다는 하지(夏至)가 어제였다. 흙을 걷어내자 오랜 시간 어두운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감자들이 하나둘 뽀얀 속살을 내밀었다. 봄날 보잘것없는 작은 씨감자 몇 조각을 묻었을 뿐인데, 비바람을 견딘 감자들은 어느새 검은 고무통과 손수레에 수북이 쌓였다.

굵직한 왕감자와 앙증맞은 도토리 감자, 못난이 감자가 한데 어우러져 딸려 나왔다. 행여 호미 날에 여린 속살이 찍힐까 봐 살살 흙을 긁어냈다. 지난 몇 달간 말없는 땅이 가슴으로 품어 키워 낸 알뜰한 열매였다. 갓 캐낸 감자를 쪄서 포실포실하게 쪼개 한 입 베어 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구수한 맛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여기서 '심다'는 헬라어로 스페이로(σπείρω)이다. 이는 단순히 ‘씨를 뿌리다’, ‘흩어 심다’라는 농업적 행위를 넘어, 자신의 땀과 시간을 투자하여 장래의 열매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맡긴다는 깊은 뜻을 품고 있다. 봄날 흙 속에 작은 씨감자를 묻으며 풍성한 수확을 소망했던 농부의 간절한 손길이 바로 “심음(스페이로)”이다.

'거두다'는 데리조(θερίζω)이다. 이는 ‘추수하다’, ‘수확하다’는 뜻을 넘어, 자신이 애써 뿌린 행위의 결과를 정직하게 되돌려 받고 그 보상의 기쁨을 온전히 누린다는 숭고한 의미다. 오늘 손수레에 수북하게 쌓인 감자들을 벅찬 마음으로 거두어들인 이 결실이 곧 '거둠(데리조)'이다. 심음은 한 줌 씨앗처럼 작지만, 거둠의 결과는 무서울 정도로 정직하다. 땅은 속이지 않는다. 손이 심은 대로, 시간이 품은 대로, 하늘이 허락한 대로 어김없이 열매를 내어 준다.

감자를 캐고 허리를 펴니 마당 한구석 낡은 비닐하우스가 눈에 밟혔다. 부임 전 탁구장으로 쓰던 이곳은 마땅히 바깥 지붕 위에 차광막을 덮어야 했거늘, 안쪽에 설치해 둔 탓에 뙤약볕을 이기지 못한 차광막은 바스러져 잿빛 가루가 날렸다. 설상가상으로 뒷산의 대나무가 바람에 쓰러지며 창끝보다 날카로운 가지로 하우스 지붕을 뚫어, 비만 오면 바닥은 흙탕물 바다가 되곤 했다. 만든 지 12년이 지난 찢어진 비닐을 얼기설기 덧대어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도용 건빵 박스가 빗물에 젖어버린 것을 보며 결심했다. 심은 것이 있으면 지켜야 하고, 거둘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고.

집사님과 의논 끝에 낡은 비닐 대신 폴리카보네이트(렉산) 판을 올리기로 했다. 낡은 허물을 걷어 내고 새파란 새 판을 덮으니 비 새던 공간이 밝고 깨끗해졌다. 눅눅하던 공기 대신 푸른빛이 은은하게 내려앉았다. 그 위에 차광막을 이중으로 덮으니 햇볕을 막아도 답답하지 않았다. 하우스 주변 흙바닥은 두더지가 파놓은 터널과 잡풀로 어수선했는데, 내친김에 주변을 시멘트로 매끈하게 발라버렸다. 이 모든 재료비는 부산 수영로교회 청년부 우주별마을 청년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준 헌금으로 가능했다. 집사님의 재능기부까지 더해지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예비하심을 다시금 경험한다.

겨울이 오면 이곳은 작은 아지트가 된다. 식당 곁 서재는 너무나 춥고 어둡다. 전기세도 아낄 겸 화목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불멍을 하며 군고구마와 군밤을 굽는다. 난로 위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김장 김치 한 포기를 길게 북 찢어 밥 한술에 올려먹으면 바깥의 추위는 문밖으로 밀려난다. 그 온기 속에서 믹스 커피 한 잔을 머금고 불길을 응시하다 보면 어린 시절 소죽 솥 아궁이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을 켜 설교를 준비한다. 낡은 하우스 한쪽에서 말씀 한 줄이 마음에 내려앉고 문장 하나가 조용히 살아난다.

가만히 돌아보면 목회도 이 흙의 이치와 같다. 눈물로 씨를 심는 날이 있고,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날이 있으며, 땀 흘려 무너진 곳을 고치는 날이 있다. 찢긴 지붕을 고쳐야 비를 막듯, 상한 영혼은 말씀과 기도로 감싸야 세상 풍파에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작은 씨앗도 기억하시고 숨은 수고조차 헛되이 버리지 않으신다. 사람이 심고 가꾼다 한들 그것이 모두 스스로 열매 맺는 것은 아니다. 얼어붙은 씨앗을 품는 것은 땅이요, 밭을 가는 것은 사람이로되,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린도전서 3장 6절).
바울의 고백처럼, 흙에 생명을 심고 땀 흘려 가꾸는 거친 수고 위에 은혜를 내리시고 마침내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묵묵히 메마른 영혼에 말씀을 심고, 찢긴 가슴에 기도를 심고, 식어버린 마음에 다함없는 사랑을 심는다. 언젠가 예수님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알곡 추수의 때에, 눈물로 묻었던 우리의 이 작은 심음조차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거둠으로 돌아올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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