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기획

한 교회, 하나의 이야기⑤ - 가음정교회

강종환 객원편집위원 기자 입력 2026.07.21 10:08 수정 2026.07.21 10:10

평신도 깨운 제자훈련 중심 공동체
미전도종족 품은 선교 사역 열매
분립개척 이어온 복음 확장다져
"온 성도 새로운 내일 위한 기도"

지난 6월 14일 설립 120주년을 맞이한 가음정교회 전경.
지난 6월 14일 설립 120주년을 맞이한 가음정교회 전경.
최종혁 목사
최종혁 목사
2026년 6월 14일 가음정교회는 설립 1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예배를 드렸다. 가음정교회의 120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이미 앞서 6월 7일 가음정진해교회의 분립 예배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의 토지를 매수하여 3층 교회당을 건축하고 필요한 시설까지 갖추어 교회를 분립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간략하나마 창원, 나아가 경남의 중심되는 교회의 하나인 가음정교회의 지난 120년을 회고하고자 한다.

■교회의 출발
등짐을 메고 인근 5일 장을 다니며 생업을 영위하던 권재학은 마산, 칠원, 진해, 김해, 웅천 등 가는 곳마다 ‘푸른 눈의 서양인’, ‘교회’, ‘예수’라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발은 교회당으로 옮겨졌고 그가 겪은 일을 가음정에 돌아와 김기원, 권종석, 김순익 등에게 전하였다. 이후 이들 중에는 권재학과 함께 교회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고 그들은 또다시 주변에 예수를 전하였다. 그리고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그들의 발걸음은 불모산(불못산) 고개를 넘어 김해읍내교회로 향하였다. 그때가 1900년대 초였다. 그러던 중 신자가 여성과 아이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 권재학은 자신의 집을 주일이면 예배 처소로 공개하고 김해읍내교회에서 조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는 가음정교회의 설립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1965년 건축된 교회당
1965년 건축된 교회당
 ‘주후 1906년 창원군 가음정교회가 성립하다. 이에 앞서 권재학이 주님을 믿고 전도함으로 김기원, 권종석, 김순익 등이 서로 이어 신앙으로 돌아와 권재학 사저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3칸 초가를 사서 모이더니 교인이 증가됨으로 예배당을 신축하니라’

교회 설립에 관한 이 기록은 자료가 보고된 1921년까지의 역사가 함께 기록된 것이다. 권재학의 집에 모인 성도들은 수가 많아지자 교회당을 준비하였고 3칸 초가를 사서 개조하여 교회당을 마련하였다.


■가음정교회 초기의 직분자들
 권재학은 1918년 1월 13일 장로가 되었으나 1940년경 아들 권정수와 함께 다시 북간도로 떠나 이후 돌아오지 못하였다. 권재학 장로의 동생 권재홍은 1939년 장로가 되었으며 아들 권정갑, 손자 권봉길 모두 가음정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김기원과 박기영은 1918년 초대 영수가 되었으며, 김기원의 장남 김종수는 집사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겼고 김성은 전 국방장관, 김효은 전 경찰청장이 그의 손자이다. 김기원 영수 역시 1920년경 만주로 갔다가 1933년경 만주에서 소천하였다. 김복식은 1920년 12월 장로로 장립되어 1921년 교회당의 증축 때 많은 수고가 있었으나 그 후 1922년 장로를 사임하였다.

 
 초대 영수이던 박기영은 1929년 장로로 장립되었다가 해방 후 한국교회가 재건될 때 함께 장로가 되었던 김상대와 함께 상남재건교회를 설립하고 떠났다. 교회 설립의 주역의 한 사람인 권종석은 1934년 1월 5일 장로로 장립되어 교회를 섬겼다. 교회 설립자 중 1인인 김순익은 성품이 정직하고 성실하였던지 권재학 장로가 만주로 떠나면서 자신의 소유인 가음정동 산 76-2 임야 990평을 교회에 헌물하면서 그 명의를 김순익으로 하였다가 해방 후에 교회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하였다. 김순익의 동생인 김상권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해방 후 장로회 총회 총무로 7년간 사역했다. 김순익의 딸 김우선은 권사가 되었으며 외손녀인 김영희, 외증손녀인 박선영도 권사가 되어 모계로 3대권가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1985년 건축한 교회당
1985년 건축한 교회당
■창원지역 교회의 산실이 된 가음정교회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일제의 강압에 움츠려 있던 한국교회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장로회의 경남노회도 노회의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일제 앞에서 행한 교회와 성도의 신사참배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측(고려파와 재건파)과 형식적인 절차로 마무리하려는 장로회 다수가 부딪혀 점차 분열의 길을 가고 있었다. 

 가음정교회 역시 그 부분을 피할 수 없었다. 출옥성도인 최덕지가 신사참배를 한 교회와 교역자, 성도들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를 부르짖고 심지어 신사참배를 한 교회당을 불살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 여러 교회에서 실행하였는데 이들을 재건파라 불렀다. 가음정교회의 일부도 그러한 최덕지의 주장이 옳다고 보고 1948년경 재건파의 주장에 동조하여 박기영, 김상대 두 장로를 중심으로 상당수 교인이 떠나 상남재건교회가 분리되었다.

 

 1951년 11월 진해교회가 피난민으로 일시 부흥되자 가음정교회의 성주기도소에 속한 교인들을 중심으로 개척의 명분으로 성주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진해교회에서 고려파인 제일진해교회가 분립되어 나가자 개척한 성주교회를 돌보지 못하여 가음정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후원하였다. 또 하나의 분리는 1951년 10월 상남기도소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교인들이 교회를 세웠고 1956년 남면교회라 이름하다가 1981년 세광교회로 교회 명칭을 바꾸었다. 또 1952년 6월 가음정교회의 안갑석, 허달막, 안교복 집사 등은 경남(법통)노회를 반대하고 교회를 분립하여 상남교회를 세웠다. 또 1970년대 초에는 정동기도소가 정동교회로 분립되었다. 결국 가음정교회에서 짧은 기간에 5개의 교회가 분립하여 6개 교회가 되어 모두 작고 어려운 교회였으나 창원이 공업도시로 변모하면서 모두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 이 모든 것은 창원이 대도시가 될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준비하신 것으로 믿고 있다.

1998년 가음정교회당의 모습
1998년 가음정교회당의 모습
■가음정교회를 섬긴 목회자, 가음정교회 출신의 목회자
지난 120년 동안 수많은 목회자가 사역하였다. 다만 교회설립 때부터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룰 때까지 전임사역자가 없었으므로 때로는 단기간을 사역하기도 하였으나 지역을 대표하고 때로는 한국교회사에도 족적이 뚜렷한 목회자가 당회장을 맡아 교회를 인도하였다.
대표적으로 심익순(Water. E. Smith 沈翊舜), 김기원(1920. 2. - 1923. 1.), 맹호은(孟晧恩, Rev. FJ. Macrae, 1916, 1926. 하반기), 이약신(1945-1946., 1949. 11. - 1952. 8.), 이금도(1962. - 1967. 5.), 손명복(1976. - 1977. 2.)이다.


 반면 가음정교회 출신의 목회자는 위 김상권 목사 외에 합동측 미주 총회장을 지낸 김월조 목사, 고려시학교장을 지낸 강유중 박사가 있으며 모두 30명 정도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가음정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한 것은 1977년 3월 23일 주종근 목사를 청빙하면서이다. 이미 주종근 목사는 1975년 4월 7일 전도사로 부임하여 가음정교회에서 강도사가 되었으며 목사안수를 받으면서 담임목사로 1981년 8월 30일까지 시무하였다. 그리고 1981. 10. 김태빈 목사가 부임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1984. 7. 사임하였다.


 가음정교회를 오늘과 같은 반석 위에 세운 공로자는 강영식 목사이다. 강영식 목사는 1984년 12월 27일 부임하였다. 당시 교회가 건축 부채로 인하여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교인들 일부가 떠나 어수선할 때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안정시켰다. 강영식 목사는 24년을 시무하고 2010년 2월 원로목사로 추대받으며 은퇴하였으며 은퇴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캄보디아 선교사로 자원하여 현재까지 선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영식 목사의 사역은 아래에서 계속 살펴볼 수 있다.





2004년 리모델링 후의 가음정교회 모습
2004년 리모델링 후의 가음정교회 모습
■평신도 훈련
 가음정교회의 성도들이 웃으면서 교회를 ‘가음정 신학교’라고 부른다. 그만큼 평신도에 대한 교육훈련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평신도 교육이 본격화된 것은 강영식 목사의 부임 후이다. 강영식 목사는 1984년 말 부임하였다.
강영식 목사가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의 기관과 체제를 전도하는 교회로 바꾼 것이다. 교회는 오직 말씀, 기도, 전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강영식 목사는 본인이 외부의 전도 훈련, 성경 연구 세미나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여하여 가음정교회에 적용하기 위한 전도와 교육의 길을 찾아 ‘새신자 성경공부’, ‘평신도 성경공부’, ‘제자훈련반’을 만들어 적용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받은 성도를 통하여 노방전도, 축호전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전 성도가 참석하는 철야기도회를 시작하였다. 외부 소음 문제로 본당에서 하지 못하고 지하 교육관을 가득 채운 성도들의 기도 열기는 교회가 부흥하는 불길을 만들었다. 교회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300명이 되지 않던 교인들이 1987년 500명에 육박하는 성도가 되었으며 계속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어 10년 뒤인 1996년 1월 마침내 출석교인 1,000명을 돌파하였는데 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인 1990년 새마음교회(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 후에는 ‘새생명훈련’, ‘중보기도훈련’이 도입되어 교회의 직분자는 누구나 이 훈련을 이수하도록 하였으며 이 두 훈련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선교
 가음정교회를 어느 정도 아는 목회자와 성도는 선교하는 교회로 부른다. 강영식 목사는 해외 선교를 위하여 선교학을 공부하여 ‘지역교회의 미전도종족 입양선교전략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를 선교 현장에 접목시켰다. 가음정교회는 미전도종족에 대한 입양선교를 받아드린 세 번째 교회로 현재 M의 L족, 태국의 타이족, 베트남의 낀족, 중국의 쭈앙족을 입양하여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현지에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입양하지는 않았으나 캄보디아에는 강영식 원로목사가 현재 84세의 고령임에도 왕성한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파송한 선교사가 8가정으로 애초에는 목회자 선교사가 4가정, 평신도 선교사가 4가정이었으나 평신도 선교사 중 3인은 선교지의 법에 의하여 목회자가 되어야 하므로 신학을 마치고 지금은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2001년 M국에 신학교를 세우고 입학생은 M국의 미전도종족에 한하여 입학생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10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어 현지 교회를 돕거나 자신들의 종족으로 돌아가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L족의 S지역에 교회가 개척되어 큰 성장을 이루어 가음정교회 100주년 기념교회당을 그곳에 세웠다.

가음정교회가 지난 6월 7일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가음정진해교회 설립예배를 드린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가음정교회가 지난 6월 7일 설립 120주년을 기념해 가음정진해교회 설립예배를 드린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미래를 향한 준비
가음정교회가 교회설립 100년을 넘기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 것은 제인호 목사(현 고신총회 사무총장)가 부임함으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전임 강영식 목사는 4년을 조기 은퇴하였는데 이를 결심한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고 변화한 사회를 능히 감당할 유능한 목회자가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제인호 목사가 선정되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기초와 오랫동안 총회교육원 간사로 성경을 연구하였으며 총회의 행정을 곁에서 눈여겨본 경력은 강영식 목사의 후임으로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제인호 목사는 가음정교회에 부임한 뒤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챤 대학인 미국 LIBERTY UNIVERSITY의 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한 이듬해에 사실상 목회를 이양받아 사역하였다. 제인호 목사의 설교는 젊은 성도들의 지성을 채웠으며 폭넓은 지식과 리더십은 교회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인호 목사의 부임 후 가장 큰 과제는 도시재개발로 인한 교회당의 건축이었다. 본당과 비전센터(교육관) 두 개의 건물은 앞으로 가음정교회가 발전해 갈 수 있는 물적(物的) 바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인호 목사의 목회 열매는 가음정진해교회의 분립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당의 건축 부채가 남아 있음에도 교회설립 120년을 기념하는 기념교회로 교회의 분립개척을 계획하여 2026년 6월 7일 가음정진해교회 설립 예배를 은혜 가운데 드렸다.
안타까우면서 감사한 것은 2003년 7월 부임하여 가음정진해교회의 교회당 건축이 마무리될 즈음인 2025년 10월 제인호 목사는 고신총회의 사무총장으로 부름을 받았고 후임으로 최종혁 목사가 부임하였다. 가음정교회는 이미 변화하는 주변 사회의 패러다임에 대처하기 위한 큰 비전의 리더십을 위하여 제인호 목사를 고신총회에 파송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었고, 또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최종혁 목사를 후임으로 청빙하여 온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