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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최근 한 교회 수련회 현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한 권사가 집사 표찰을 단 성도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머, 나보다 한끝 아래네."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단순한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교회 안에 자리 잡은 직분 의식과 서열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은 성경 어디에서도 계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장로는 권사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며, 권사는 집사보다 더 귀한 존재가 아니다. 직분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고, 특권이 아니라 사명이다.
장로는 교회를 더 많이 책임지는 사람이며, 권사는 더욱 깊이 기도하며 섬기는 사람이다. 집사는 교회의 손과 발이 되어 봉사하는 직분이다. 직분이 높아질수록 자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를 다툴 때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명령하지만, 복음은 높은 직분일수록 더 많이 섬기라고 요구한다.
그럼에도 현실의 교회에서는 직분이 섬김의 이름보다 신분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장로인데."
"내가 권사인데."
"아직 집사밖에 안 됐어?"
이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갈 때 직분은 은혜의 도구가 아니라 자존심을 드러내는 장식이 된다. 장로가 된 뒤 인사를 더 많이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권사가 된 뒤 말에 권위를 세우려 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반대로 집사나 직분이 없는 성도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거나 교회의 주변인처럼 느끼기도 한다.
교회가 세상의 서열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교회 안에서는 더욱 촘촘한 호칭과 직분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명찰의 직분을 이렇게 바꿔 달면 어떨까.
'장로' 대신 '더 많이 섬길 사람', '권사' 대신 '더 많이 기도할 사람', '집사' 대신 '더 많이 뛸 사람'.
그렇다면 누구도 "나보다 한끝 아래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저 사람보다 한끝 더 낮아져야겠네"라고 고백하게 될지도 모른다.
행사가 끝나면 가슴에 단 명찰은 떼어낸다. 그러나 마음속에 붙어 있는 보이지 않는 명찰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너보다 위다', '나는 더 오래 믿었다', '나는 직분이 더 높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직분은 승진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모두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며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동역자다.
교회 안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먼저 무릎 꿇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귀한 직분은 결국 '섬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