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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넝쿨의 변신 - 강상선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7.21 11:04 수정 2026.07.21 11:04

강상선 목사
영남총회신학교 교수역임
새생명교회 담임목사

초록 풀 기둥이 들판에 서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칡넝쿨이 전봇대를 빈틈없이 휘감고 올라가 있었다.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온 산에 나무들이 칡넝쿨에 덮여 꼼짝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힘없는 식물은 일찍 쓰러져 버리고, 살아있는 식물은 그나마 산을 오르는 이의 손길에 의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골에는 곳곳에 전봇대가 세워져 어둠을 밝히고 있다. 어느날 논두렁에 세워진 전봇대는 보이지 않고 초록 풀 기둥이 보였다. 칡넝쿨의 왕성한 생명력으로 구조물을 휘감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논두렁에서 일어난 것이다. 칡은 봄에 움이 트기 시작하여 한번 뻗은 줄기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가다가 흙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는 끈질긴 야생식물이다. 생명력이 끈질겨서 뿌리를 온전히 캐지 않으면 절대 죽지 않는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여름에 칡넝쿨이 풍성하게 자라 다른 식물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칡넝쿨의 왕성한 생명력은 ‘공포의 식물’처럼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아름다운 경치를 훼손하기도 한다. 고속도로 주변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칡넝쿨이 식물을 다 덮쳐 꼼짝없이 죽어 허물어진 모습만 남아 있었다. 기차길 주변도 아름드리 큰 나무가 싱그러움을 자랑하였지만, 그 나무도 칡넝쿨이 삼켜버려 축 늘어진 모습이 눈길을 돌리게 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열심히 땀흘리며 살아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자도 있다. 부모님 덕분에 부자처럼 살고 있지만, 그 재산도 끝이 나면,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남의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더 한 일은 ‘남의 마음까지 훔치며 살아가는 자로 전락하게 될까 두렵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 논리가 성립하는 사회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거나 지배당하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희생시키고 번영한다는 냉혹한 생존경쟁을 볼 수 있다. 동물 세계에서 강자가 약자를 사냥하는 모습처럼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압도하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약자는 항상 강자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생태계뿐 아니라 강대국과의 관계, 기업 간의 경쟁, 개인의 삶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살아가는 상황을 이 풀 기둥을 보면서 떠올리게 된다.
힘없고 취약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금전적 착취나 학대 소식은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는 누구 하나도 안심 놓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드는 것은 나보다 더 강한 것이 언제 나에게 접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서로 돕고 함께 잘 살아가는 상생 관계, 서로 이익을 얻어 함께 성공하는 관계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칡은 인체에 유익하다 하여, 매일 끓여 차로 마시기도 하고 칡즙을 마시기도 한다. 또한 주변 나무에 걸쳐 원 나무를 꼼짝 못 하게 하여 마치 칡 나무가 주인이 된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사회에 피해를 주며 먹고사는 묘한 인생,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과 같은 모습이다.
칡은 가을이면 잎은 떨어지지만 줄기는 살아 있고, 뿌리는 겨우내 영양분을 만들어 봄에 움을 튼다. 이른 봄에 움트기 전에 뿌리를 캐서 식용으로 사용한다. 이제 칡넝쿨은 골칫덩이에서 농가 소득원, 친환경 에너지원 생태 미술 재료 등으로 변신하여 뿌리는 한방 재료, 잎은 사료 및 퇴비로 활용되고, 줄기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심지어 버섯 배지와 함께 고체 연료로 재활용되어 ‘골치 아픈 덩굴’에서 쓸모가 있는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칡넝쿨의 변신인 셈이다.
골칫덩이 칡넝쿨이 인간을 살리는 자원이 되듯, 우리 인간 역시 이기적인 탐욕을 내려놓는 순간 언제든지 세상에 이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삭막한 세상일지라도 칡넝쿨의 변신을 보며 희망을 품는다. 남의 마음을 훔치던 손을 거두고, 이제는 타인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차 한 잔’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겠다는 이들이 일어나길, 저 들판의 초록 풀 기둥 앞에 가만히 새겨본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한다면,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아가야 한다. 칡넝쿨이 변신한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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