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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그 후로도 매년 같은 날 찾아와 1인분의 우동을 나누어 먹던 세 모자는 어느 해부턴가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마침내 번듯하게 장성한 두 청년과 어머니가 되어 다시 북해정의 '예약석'을 찾았다. 의사가 된 형과 은행원이 된 동생은 당당하게 우동 3인분을 주문하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 우동집 주인장이 건넨 넉넉한 우동 한 그릇의 온기와 배려가 자신들을 버티게 한 힘이었노라고 말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 일본 국회에서 어느 의원이 낭독해 온 장내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소외된 자를 향한 작은 나눔이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이 된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소자)를 향해 우동이 아니라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냉수는 특별한 기술이나 거창한 재물이 없어도 누구나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물질이다. 즉,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물질의 유무가 아니라 '용기와 여유'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저마다 손에 '냉수 한 그릇'쯤은 쥐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나 한 몸 건사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내 작은 마음이 어디로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그 통로를 찾지 못해 손을 뻗지 못하곤 한다.
숨 막히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계절,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갈증에 목말라하는 소외된 이웃들이 많다. 내가 가진 작은 냉수 한 그릇을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문을 두드려보길 권한다. 혼자서는 작고 미미한 물 한 모금일지라도, 함께 모여 흐를 때 그것은 메마른 이웃의 삶을 적시는 생명수가 될 것이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