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의 작고 조용한 시골 예배당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진주 노회 소속 진주 도동 교회 제3여전도회 회원 열두 분이 우리 교회를 방문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순을 전후한 회원들, 소중한 발걸음이 이 산골짜기 예배당에 불어넣은 활기는 실로 대단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신 분도 계시고, 오후 예배까지 머물러 은혜를 나누신 분들도 계셨다. 몇 명 되지 않은 썰렁한 분위기 속에 예수님의 제자처럼 12분이 합석을 하니 널널한 예배당이 꽉 찬 느낌이 든다.
오후 예배가 시작되고 다 함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였다. 평소 우리끼리 드리는 예배의 풍경은 참으로 소박하고 고요하다.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는 권사님, 평생 한글을 배우지 못해 찬송가 가사를 읽지 못하시는 아흔두 살의 할머니, 아직 곡조가 익숙하지 않아 입술만 달싹이는 초신자 성도….
그 곁에서 내가 아무리 마이크를 쥐고 열창을 해도, 성도들의 찬양 소리는 내 마이크 목소리에 묻혀 허공으로 흩어지곤 했다. 늘 그렇게, 고요하고 때로는 쓸쓸하게 찬양을 드려왔다.
그런데 열두 분의 여전도 회원들이 합석한 연합예배의 찬양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저토록 맑고 고운 목소리들이 이토록 힘차고 웅장하게 예배당을 채울 수 있는지. 눈을 감고 곡조와 가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부르는 찬양, 간절한 기도가 고스란히 녹아든 그 울림 속에서 몇몇 회원들은 연신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훔친다. 주님을 향한 사무치는 사모함이 뚝뚝 묻어나는, 진실하고도 애절한 찬양이었다.
순간, 텅 빈 메아리처럼 건성으로 찬양을 불러왔던 우리 교회의 지난 모습 위로,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옛 시절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부교역자 시절, 천 명이 넘는 성도들 앞에서 펄펄 끓는 열정으로 강대상을 두드리며 찬양을 인도하던 앳된 전도사, 신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많은 성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박자를 맞추며 땀방울이 맺히도록 찬양하고, 뜨겁게 통성으로 기도하던 그 가슴 벅찬 광경들 말이다.
개척교회의 험난한 시간을 지나 이곳 시골 교회에 부임한 이후, 나는 어느새 그 뜨거웠던 분위기와 애절함, 간절한 찬양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다.
강단에서 목청을 높여 설교를 해도 늘 눈을 감은 채 묵상에만 잠기시는 권사님, 배불리 점심을 드시고는 이내 꾸벅꾸벅 조시는 성도들을 보며, 때로는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핀잔도 주어 보았다.
그러다 ‘고된 밭일과 농사일에 지쳐서 참 많이 힘드신가 보다’ 하며 스스로 체념한 채 설교하고 찬양해 온 지난날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천상의 화음처럼 울려 퍼지는 그 고운 목소리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찬양의 영적인 분위기만으로도 가슴이 압도되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간절한 기도가 새어 나왔다.
"주님, 우리 예배당에도 저만큼이라도 젊은 성도들을 좀 보내주세요."
성도 수가 그저 "이만큼만 되어도".....
정말 "이만큼만 되어도" ......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내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여러분, 제발 집으로 가지 마시고 그냥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아요!"
그 절절한 투정에 예배당 안은 한바탕 기분 좋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후 예배는 설교 대신 올가을 추수 감사주일에 세례를 받으실 할머니를 위해 함께 학습·세례 문답 공부를 진행한다. 성도들도 옛날에 배웠던 기본 교리들을 거의 잊으셨기에 다시 반복한다. 오늘 다룬 제5장의 주제는 '죄란 무엇인가?'이다. 성도들은 항상 생소한 것처럼 들리나 보다. 어차피 성경공부는 반복이다. 한 글자씩 더듬으며 진리를 깨우쳐가는 시간은 소중한 목회의 일상이다.
모든 예배와 순서가 끝난 뒤, 손님들을 식당으로 모시고 소박한 음식들을 나누며 정겨운 담소를 즐겼다. 도시에서 이 먼 시골 교회까지 찾아와 준 발걸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시골이라 마땅히 대접할 것도 없었지만, 닭장에서 나온 유정란 청계란과 백봉 계란을 삶아드리고, 수박과 토마토 주스와 참외, 밀가루 빵떡이 모두지만 그래도 잘 드셔서 감사할 뿐이다.
진주 도동 교회 제3여전도회 회장 안정희 집사님과 모든 회원들, 그리고 이호영 목사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언제든 시골의 정취가 그리워지면 다시 찾아와 편히 쉬다 가기를 바란다. 손님들을 떠나보내고 텅 빈 예배당을 정리하며, 마음 한구석에 묘한 상념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목사라는 십자가를 지고 사는 지금보다, 평신도로 섬기던 그 시절이 인간적으로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솔직한 상념이다. 그때는 교회 장년회 회원들과 땀 흘리며 족구도 하고, 왁자지껄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청장년면려회 순회 헌신예배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특별한 책임감의 짓눌림 없이 그저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했던 안수집사 시절의 그 삶이 참으로 팍팍하지 않고 따뜻했다. 오늘 우리 교회를 찾아와 뜨겁게 찬양하고 환하게 웃던 저분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목사가 되고 보니, 삶의 모든 순간이 결코 녹록지 않고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버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 예배당에 울려 퍼졌던 그 눈물의 찬양 소리가 지친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만큼만 되어도…."
정말 목회할 맛이 날 것 같다.
"이만큼만 되어도…."
"이만큼만 되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