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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독서는 신앙적 토대 위에서 지식을 입체화한다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8.10 13:55 수정 2026.08.10 13:55

목사님의 서재(3) - 정병표 목사(진주새금산교회)

정병표 목사
정병표 목사
독서를 좋아한다거나 취미가 독서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보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일거리라면 몰라도 독서가 사역인 내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사역이라고 하는 까닭은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설교라고 할 때 독서를 배제한 설교 준비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어렵고 힘들어도 설교자로서 목회자는 독서를 숙명이나 사명처럼 받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를 알지만 나는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밝히고 다음 글을 이어 나가고 싶다.

■독서와 인사이트
어린 시절의 내가 자란 환경은 독서와는 거의 무관했다. 부모님은 글을 모르셨고, 집에는 책이 없었다. 마을에도 초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가 드물었다. 장래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는 이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학교를 파하면 뛰어놀거나 소먹이고 꼴을 하며 지났으나 다행히 중학 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다. 중3이 끝나가는 겨울 성탄절 전야였다. 재미로 가본 교회에서 한 달 만에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시골교회의 착실한 출석 교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무력하고 꿈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약 1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예배당 뒷벽에 기댄 책장에 있는 몇 권의 신앙 도서 중에 한 권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제목이 항상 주눅 들어 살아가던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 책을 빌려 가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얼굴이 밝아지고 가슴이 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그 자긍심을 그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책의 제목과 저자를 밝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권장 도서였던 그 책의 저자가 훗날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도 인간의 성공 중심주의로 비판받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비판에 동의하지만, 지극히 낮은 자존감으로 땅만 보고 살았던 나의 눈을 하나님께로 들게 하였다는 점에서 보면 고마운 책이었다.

■독서 효과의 불확실성
나는 모든 독서가 반드시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지 못했을 때다. 학교 도서관에 있던 ‘논어’와 ‘신약 이야기’를 읽고 예수님보다 공자에게 호감을 가졌던 적이 있다.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 질문하자 “삶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는 대답이 예수님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는 말씀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았다. 심지어 연로한 공자가 젊은 예수님보다 겸손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당연함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독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 관심 분야,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다. 누가 읽고 유익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신앙적인 준비가 충분하게 확립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독서는 그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할지 모르는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 독서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취향을 따른 독서가 되어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노파심 때문이다.

■신앙적 토대 위의 독서
목회를 하는 중에 오랜 기간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동서양 철학사를 비롯하여 철학의 주요 주제를 공부하다가 보니 나름 흥미로운 점이 적지 않았다. 문득 내가 신앙인으로서 신학적 토대를 갖지 않고 철학 사상을 접했다면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한번은 작심하고 민음사에서 출간한 1,000쪽이 넘는 스티브잡스의 전기를 읽었다. 세상을 바꾼 창의적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저절로 몸이 청결하게 되어 씻지 않아도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믿고 잘 씻지 않았다는 내용에는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힌두교를 신봉하여 자주 인도를 방문했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사상의 토대가 천재라는 사람도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여겨졌다. 명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신학을 시작한 신학대학원 동기가 있다.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는 기숙사 생활을 같이하면서 곁에서 직접 보았다. 그런데 목회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철학적 논리 전개가 설교를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길로 가게 되었다. 내가 목사가 되고 난 뒤에 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에 감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모든 사상이 성경적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을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철학을 신학적 진리를 더 명료하게 드러내고 체계화하기 위해 도구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볼 때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독서도 귀하지만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는 신앙적 토대를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을 입체화하는 독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설교사역과 무관하게 독서를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원래대로의 의미로 쉽게 성도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가 한결같은 숙제였다. 원어와 문맥에 따른 본문 연구, 전체 맥락 속에서 신학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성경이 쓰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파악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연구가 없이 우리가 읽는 한글 성경만으로는 성경 본래의 의미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 시대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바울 사도가 황제의 판결을 얻기 위해 로마에 갔을 당시에 통치하던 인물이 네로라는 사실과 네로의 인물 됨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한편 몹시 답답해했을 바울의 심정이 느껴진다. 또한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된 로마 시민권은 어떤 경위로 나면서부터 가질 수 있었을지 그 시대의 시민권 취득 방법 연구로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책은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과 저자가 기독교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배경을 살펴보는 데 유익하다. 여기에 현실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의 현상을 담은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설교의 적용에 중요하다. 특히 신문의 경제난을 주의 깊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설교를 듣는 성도의 삶이 치열한 현실 생활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배경지식은 성경 본문의 내용을 지면에서 끄집어내어 듣는 이의 눈앞에 입체화시키는 데 크게 유익하다.

독서가 취미나 소일거리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나 목회자의 독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가감 없이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있도록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목회 사역의 특성상 우선순위나 주제 선택에 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무조건 믿으라는 말씀보다 믿을 수밖에 없는 말씀을 준비하여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필요한 독서를 통해서 목회 현장의 예배가 의무를 넘어 은혜의 시간이 되고 삶의 현장을 견디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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