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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그 시대를 돌아보며 ‘예닮교회’ 성도들이 10년간 나무를 깎아 만든 목공예 예술 작품을 통해 복음과 구원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였다. 작품으로 방주에 탑승하는 동물들과 홍수, 구원의 여정을 그 시대의 시대상을 옮긴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잘 빚어낸 모습을 본 대로 밀려오는 벅찬 감동을 나누고 싶어졌다.
한여름 ‘경남노회 산하, 여 교역자들’은 대전에서 열린 ‘노아의 방주 : 새로 밟는 땅’을 찾아갔다. 전시는 성경의 실제 모습을 방불케 하였고, 동물들의 모습, 방주의 모습,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빗어낸 모습에서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성경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신학적, 학문적, 영적 도전을 받으며 끊임없이 현재 삶의 자리에서 성경 말씀을 새롭게 적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보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 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세기 6장 2절) 인간은 보는 눈으로 죄를 지음으로 이미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온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대홍수로 심판하시기 전, 신실한 노아와 그의 가족, 동물들의 생명을 보존하여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게 하려고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이는 홍수라는 멸망 속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방편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살아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명을 멸할 계획을 세워, 의인이었던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동물들을 피신시키라고 명령하셨다. 노아의 가족과 씨가 될 각종 육축과 들짐승들을 홍수에서 살려내어, 멸종을 막고 새로운 세상을 이어가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노아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 속에서도, 주변의 조롱과 수많은 의심 속에서도 묵묵히 100년 이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지어갔다. 방주가 드디어 완성되고 모든 생명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거대한 구원의 문을 닫으신 분은 노아가 아닌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과 모든 동물을 한 쌍씩 태워 건져내신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구원을 갈망한다. 동물들은 구원을 갈망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방주를 향한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들은 전쟁, 중독, 유흥을 즐기며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간다. 노아와 방주를 등지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도성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구원을 택한 동물들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이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방주를 짓고 준비할지라도, 최종적으로 보호하시고 인을 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신 후에는 그 누구도 문을 열 수 없었다. 구원의 문이 언제까지 열려있지 않으며, 심판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창조주이심을 알게 된다. 노아와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서 건져냄을 받아 새 시대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아슬아슬하게 삶과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노아 가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내 주위의 이웃 친구들이 간곳없는 것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대홍수가 끝난 뒤 방주에 탑승하여 구원을 경험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약속인 무지개와 새로 밟는 땅을 마주한다. 노아는 자신의 삶을 믿음으로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다. 노아의 가족들은 남은 자로서 이제 새롭게 시작한다. 귀로 듣는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고 경험함으로, 믿음의 차원이 다른 노아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이 만나는 이 장면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 때문에 방주에 못 들어갔을까? 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을까? 기회가 있을 때, 손짓할 때, 인도해 줄 때 발걸음을 옮겨 가야 한다. 나를 내려놓고, 보이는 물질을 내려놓아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기회는 순종하는 이가 붙잡는다. 영원할 것 같은 세상은 한순간에 없어질 것이다. 한순간의 것으로 영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중 노아를 부르신 이유는 명확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한 사람, 노아의 의로움과 순종을 보시고 그의 온 가족에게 방주에 탈 특권을 허락하신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올바른 신앙은 자기 자신을 넘어 사랑하는 이들을 살려내는 구원의 울타리가 되었고, 그 가족을 통해 인류의 새 시대를 열어 가신다.
당신의 구원은 어디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