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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完 -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8.10 14:05 수정 2026.08.10 14:05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김동길 교수 연재 完
:유족 초청모임과 삶 마무리

양재한 장로
양재한 장로
김동길 교수가 존경하며 따르고자 했던 강성갑 목사,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지난 2017년 4월 17일(목) 오후 5시 김동길 교수 초청으로 강 목사 유족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모임이 선생의 자택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이 모임에서 김동길 교수는 ’강 목사는 해방 후 어려운 여건에도 흙벽돌로 학교를 지어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을 가르쳤으며, 그는 다부지고 추진력이 강하고 정신력이 뛰어난 지도자였으며, 그가 오래도록 살아계셨다면 우리 교육계는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회고하였다. 그리고 강 목사는 하늘이 내린 인물인데 그의 죽음으로 한 시대의 영웅을 잃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고, 살아계셨다면 ’졸업 후 진영으로 내려가 강 목사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한얼중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실천운동을 함께 했을 것‘이라 회고하였다(믿음의 선진 삼형제 이야기, 191). 아래 사진은 김동길 교수 초청으로 함께한 유족들의 모습이다.

유족들의 힘든 삶의 여정을 담은 글이 발견된다. 심진구 교수가 1968년 《인천교대논문집》에 ‘향토교육의 선구자 강성갑에 관한 사례연구’란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에 1968년 이전 유족들의 힘든 삶을 엿볼 수 있다. “장녀(옥경, 1935년생)는 부친별세로 인해 신학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3년간 한얼중학교에서 서무 일을 보다 결혼 후 병사했고, 차녀(옥선, 1936년생)는 부산의 한국보육대학 2년을 졸업하고 보모생활을 하다 결혼하여 현재 부산에 살고 있고, 장남(흥철, 1940년생)은 한얼고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 3년간 군 복무를 마치고 경찰에 투신한 지 1년이 못 되며, 3녀(혜선, 1944년생)는 부산 남성여고, 4녀(영희, 1947년생)는 한얼여고를 졸업하고, 차남 막내 영철(1949년생)은 고교 2학년을 중퇴하였다.”

2020년 12월 5일 《국민일보》에 ‘목사의 딸 강혜선’이란 글에는 강 목사 순교 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유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억울한 죽음은 둘째치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미망인 오중은은 교계의 도움으로 진해 모자원 등에서 생활하며 연명했다. 훗날 장남은 독일 광부생활을 했으나 가난은 벗어나지 못했다. 차남은 진영이라면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막내딸 영희는 목회자 사모가 되었다”고 한다. 목회자 사모가 된 막내딸 영희의 ‘우리 엄마’란 회고 글이 있다. 이 글은 오중은 사모(1914-1991)의 천국을 향한 마지막 모습을 엿보게 한다. “남편이 군목에서 10년 근속하다 충주에서 일반목회를 시작할 즈음 형제들의 어려운 거쳐 때문에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와 5년 정도 함께 생활하였다. 처음에는 거동하셨지만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우리 집을 떠날 때는 꼼짝 못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불평이 없으셨고 조용하시며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김동길 교수는 이런 유언장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과 추모식은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곧바로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하여 의과대학생들 교육에 쓰여지기를 바라며, 누가 뭐래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2011년 10월 2일. 김동길).”

선생은 유언장을 쓴 지 10년이 지난 2022년 10월 4일(95세) 코로나 확진 후유증으로 소천하였다. 선생이 기거해온 사저는 생전에 이화여대에 기증하였고, 그의 시신은 장례식과 추모식은 생략한 채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하라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기증되었다. 그러나 선생을 따르던 많은 숭모자들은 사망 2주가 지난 2022년 10월 18일 오후 2시, 그동안 선생과 함께한 ‘링컨아카데미’와 ‘목요서당’ 주최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에서 ‘김동길 선생님 환송예배’로 모였다. 예배순서를 모두 마치고 참석자 일동은 김동길 교수 애창곡인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부르며 선생을 보내 드렸다.

 

다음은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윤인구 총장 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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