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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2020년 12월 5일 《국민일보》에 ‘목사의 딸 강혜선’이란 글에는 강 목사 순교 후 생활고에 시달렸던 유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억울한 죽음은 둘째치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미망인 오중은은 교계의 도움으로 진해 모자원 등에서 생활하며 연명했다. 훗날 장남은 독일 광부생활을 했으나 가난은 벗어나지 못했다. 차남은 진영이라면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막내딸 영희는 목회자 사모가 되었다”고 한다. 목회자 사모가 된 막내딸 영희의 ‘우리 엄마’란 회고 글이 있다. 이 글은 오중은 사모(1914-1991)의 천국을 향한 마지막 모습을 엿보게 한다. “남편이 군목에서 10년 근속하다 충주에서 일반목회를 시작할 즈음 형제들의 어려운 거쳐 때문에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와 5년 정도 함께 생활하였다. 처음에는 거동하셨지만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우리 집을 떠날 때는 꼼짝 못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불평이 없으셨고 조용하시며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김동길 교수는 이런 유언장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과 추모식은 일체 생략하고 내 시신은 곧바로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하여 의과대학생들 교육에 쓰여지기를 바라며, 누가 뭐래도 이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2011년 10월 2일. 김동길).”
선생은 유언장을 쓴 지 10년이 지난 2022년 10월 4일(95세) 코로나 확진 후유증으로 소천하였다. 선생이 기거해온 사저는 생전에 이화여대에 기증하였고, 그의 시신은 장례식과 추모식은 생략한 채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기증하라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기증되었다. 그러나 선생을 따르던 많은 숭모자들은 사망 2주가 지난 2022년 10월 18일 오후 2시, 그동안 선생과 함께한 ‘링컨아카데미’와 ‘목요서당’ 주최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에서 ‘김동길 선생님 환송예배’로 모였다. 예배순서를 모두 마치고 참석자 일동은 김동길 교수 애창곡인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부르며 선생을 보내 드렸다.
다음은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윤인구 총장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