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는데, 너를 떠나보낸 지도 어느덧 해가 바뀌고, 온 세상이 푸르러지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너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 너와 함께한 지난 60여 년의 세월이 마치 어제 일같이 또렷이 기억나고, 좋은 일, 궂은 일을 함께 겪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추억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1964년 9월 9일, 봉점리 시골집에서 네가 태어났을 때, 이 아버지는 취업 준비로 서울에 있어서 너를 곧바로 보지 못했다. ‘동양에서 제일가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동일’이라 작명하여 출생신고를 하고, 태어난 지 거의 3개월이 되어서야 귀여운 너를 안아볼 수 있었는데, 어찌나 귀엽고 예뻤던지…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애비를 쏙 빼닮았다고 했단다.
너는 커가면서 이 아버지를 무척 많이 따라다녔었지. 수영장에도 친구나 친척집을 방문 할 때도, 심지어 내가 ‘부산대한조선공사’에서 60톤 크레인 기사로 일할 때는 작은 손과 여린 다리로 엄마 손을 잡고 따뜻한 점심을 누비 보자기에 싸들고, 내리막길을 내달리며 회사 후문까지 배달해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사랑 가운데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두 딸 ‘여정’이와 ‘서령’이를 낳고, 그 아이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귀여운 손녀를 안으며 기뻐하던 너였다.
작년 초봄 어느 날, 현관을 들어서며 “폐암이래요”라고 네가 말하던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주저앉고 말았다. 이후 서울삼성병원을 몇 번 오르내리며 치료를 받던 중, 하루는 네가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 사랑합니다. 지금껏 제대로 효도 한 번 못 해드렸는데…”라고 했지. 그때 나는 “나도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단다. 빨리 나아서 돌아와야지”라고 답했다. 그 말이 사랑하는 너와 나눈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 구급차를 타고 창원으로 내려와 요양하면서도 너는 평소 쓰던 성경 필사를 계속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뒤틀고, 눈을 껌뻑이면서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달려가서 너를 붙들고 “아이구 하나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라고 소리치며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창원 파티마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이 집을 떠난 너의 마지막 길일 줄이야.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너를 볼 때는 절망감에 휩싸이곤 했지만, 그래도 위를 보고 함께 기도하면서 소망을 가지라고 말을 건넸다. 네가 듣고 있었는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6월 19일 서령이가 “할아버지, 아빠 가셨어요. 마지막 얼굴 보셔야지요”라고 해서 영안실로 옮겨가는 침대를 세우고 면포를 벗기고 싸늘하게 식은 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는 울부짖었다.
“이놈아, 그렇게 좋은 곳이면 나도 같이 가자. 너와 내가 그렇게도 가까웠는데, 왜 이렇게 매정하게 이 아비를 두고 가느냐.”
그날 아침, 너의 주검 앞에서 느꼈던 그 고독과 허망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사랑하는 아들 동일아.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 가족을 이 슬픔 속에 버리십니까.”
믿음 없는 사람처럼 울부짖기도 했다.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이라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눈에 선하게 네가 나타나곤 할 때는 어떤 행복감에 젖기도 한단다. 너를 기억하는 한, 너는 내 안에 살아 있고 주님과 함께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한 달여 동안 네 엄마와 네 아내가 중환자실 앞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소원하며 기도하는 동안, 여러 성도님들과 친지들이 정말 분에 넘치도록 기도해 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단다. 우리 부부의 식사 문제 등 각양각색으로 분에 넘치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 특히 사림동 구역식구들과 사촌 형제들의 희생적인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고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고 전해야 할 것 같구나.
10여년 전 이 아비의 일기장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라.
“그래 한 세상 웃으며 살다 가라. 당신이 참았던 눈물은, 당신이 웃으며 떠난 그 날, 당신을 잃은 수 많은 사람들이 대신 흘려 줄 터이니”
생각나는 모든 것이 한때의 기억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의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 모르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용기와 소망 가운데 칠전팔기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