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덥다. 아니, 덥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뜨겁다, 너무 뜨겁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뜨겁다. 문을 열고 밖으로 단 한 걸음만 내디뎌도 훅 끼쳐오는 열기가 얼굴을 덮친다. 열기가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남부 지방에 비다운 비가 내렸던 때가 아득하기만 하다.
한 달 전 소나기가 스치듯 지나간 이후, 장마철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먹구름만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빗방울 한 번 제대로 떨구지 않은 채 야속한 구름은 조롱하듯 멀어져 갔다. 어제 일기예보는 기어이 합천군 청덕면이 40도를 찍었음을 알렸고, 인근 양산은 41.6도까지 끓어올랐다. 지붕도, 메마른 밭고랑도 하루 종일 가쁜 숨을 토해 냈다.
교회 뒤편 닭장의 닭들은 쩍 벌린 부리 사이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대나무 잎은 수분을 빼앗긴 채 비비 꼬여 신음한다. 밭의 사정도 매한가지다. 바싹 말라버린 당근과 콩은 참담한 심정으로 모두 뽑아 버렸다. 고구마 잎은 화상을 입은 듯 벌겋게 타들어 가고, 흙은 발을 디딜 때마다 뽀얀 먼지만 펄펄 일어난다. 올해 농사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저수지를 만들고 호스로 물을 댈 수는 있지만,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다. 굳게 닫힌 하늘의 물길을 열어젖힐 수는 없다. 가뭄은 침묵 속에서 인간의 오만을 향해 묻는다. “사람아, 네가 저 하늘을 다스릴 수 있느냐?”
타들어 가는 농민들의 마음처럼 청도, 밀양, 창녕의 저수지도 벌건 바닥을 드러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급기야 양산시와 창녕군에서는 가야진사와 사직단에 모여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제사상을 차리고 용왕신(龍王神)에게 제발 비를 내려 이 메마른 논밭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엎드려 빌었다.
그러나 성경은 비와 이슬을 주관하시는 분이 낙동강의 용신(龍神)이 아니라, 오직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가뭄은 단순한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메마름과 직결된 문제이다. 솔로몬은 영광스러운 성전을 완공한 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는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역대하 6장 26-27절)
솔로몬은 덮어놓고 비부터 구하지 않았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죄에서 떠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모든 영적인 회복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를 구했다. 비보다 철저한 회개(悔改)가 먼저였고, 갈라진 땅의 회복보다 찢어진 마음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오늘 우리는 논밭의 곡식이 살아나는 것만 애타게 바라면서, 정작 죽어가는 예배와 텅 빈 심령의 회복은 구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마땅히 타들어 가는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비만 구해서는 결코 안 된다. 내 영혼의 믿음이 죽어 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7장 14절)
하나님께서는 비구름만 쳐다보지 말고 “내 얼굴을 찾으라”고 명령하셨다. 일찍이 언약을 저버린 백성에게는 이렇게 경고하셨다.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레 26:19?20)
하늘이 철처럼, 땅이 놋처럼 되면 죽을 만큼 가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통해 경고하신다. 아무리 땅이 바싹 메말라도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矜恤)까지 말라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저 비만 구하지 말자. 껍데기 같은 땅의 회복만 바라지 말고, 우리의 교만을 돌아보며 죄에서 떠나는 것이 먼저다. 곡식만 살려 달라고 매달리지 말고, 죽어 가는 내 영혼의 믿음을 먼저 살려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하자.
“하나님, 메마른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폭염 가운데 고통받는 저희들을 긍휼로 지켜 주시고, 타들어 가는 논과 밭에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완악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키시며, 식어 버린 기도를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메마른 저 땅 위에는 시원한 비를 내려 주시고, 메마른 심령 위에는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 우리가 주의 손에서 떨어지는 선물만 구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간절히 구하게 하옵소서.”
가뭄 속에서 텅 빈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비만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