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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넷, 여전히 늦지 않았습니다 - 박호산 수석원장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8.24 14:02 수정 2026.08.24 14:02

의료칼럼 - 박호산 수석원장(창원하나치과의원, 창원남산교회)

박호산 수석원장
박호산 수석원장
지난 주, 아흔넷이 되신 어르신 한 분이 진료실을 찾아오셨다. 오른쪽 위 작은어금니가 요 며칠 부쩍 불편해지셨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치아뿌리 주변으로 염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발치와 임플란트 계획을 말씀드렸다. 아흔넷이라는 숫자 앞에서 나 스스로도 잠시 망설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르신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해주세요” 하고 흔쾌히 답하셨고 수술은 금방 끝났다. 오히려 어르신의 짧은 대답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치아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씹는 기능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음식을 씹고, 말을 만들고, 웃을 때마다 함께했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일이다. 치과에 오래 몸담으며 느끼는 것은, 치아 하나의 상실 앞에서 사람들이 짓는 표정이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는 사실이다. 씹지 못하는 불편함보다, 무언가 자기 몸에서 허물어졌다는 상실감이 더 클 때가 많다.

임플란트라는 치료는 결국 그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발치로 비워진 자리에 티타늄으로 만든 인공치근을 심고, 그 위에 다시 치아의 모양과 기능을 회복시켜드린다. 신기한 것은, 뼈가 그 인공의 기둥을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단단히 붙잡아 준다는 사실이다. 무너졌던 자리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온전한 자리로 돌아온다.

이사야 58장 12절 말씀이 떠오른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길을 수축하여 거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하나님은 무너진 것을 그저 슬퍼하고 마시는 분이 아니라, 그 자리를 친히 다시 세우시는 분이시다. 성벽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오래 방치되어 황폐해진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다시 세우지 못할 만큼 늦은 자리란 없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자리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제 와서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엇을 시작하겠나.’ 오래 무너져 있던 마음의 자리를 두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짓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가 얼마나 오래 집을 떠나 있었는지 계산하지 않으셨다. 그저 뛰어나가 그를 안으셨다. 회개와 회복에는 시효가 없다.

아흔네 해를 살아오신 어르신께 임플란트를 권해드리며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치아를 다시 세우는 데에 나이는 문턱이 되지 않았다. 어르신은 망설임 없이 그 회복을 받아들이셨고, 이제 새 치아로 다시 편안히 식사하실 날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 결단을 지켜보면서, 문득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너진 자리를 두고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랴” 하며 덮어두기보다, 어르신처럼 “해주세요” 한마디로 그 회복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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