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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10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29 15:46 수정 2026.01.29 15:46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양재한 장로
양재한 장로
4. 무명(無名)의 도(道), 이규호

1) 무명(無名)의 도(道)란?
철학자 단계 이규호가 말하는 ‘삶의 철학 = 무명(無名)의 도(道)’는 자신이 추구했던 삶의 길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가 걸어온 삶의 길을 그는 스스로 ‘무명의 도’라 부르고 있다. 즉, 사람 이름이 없는 ‘익명’을 얘기하는 ‘무명’이 아니고, 특정 이념이나 체제에 얽매이지 않은 자신만의 자유와 삶의 길을 말한다. 이규호 자신은 우리 사회가 무슨 주의 무슨 관념이 판을 치고 있지만 삶의 현실을 떠난 것은 싫다는 것이다. 가끔 이데올로기 자체가 삶의 현실을 왜곡할 수 있으므로 현실을 직시하고 평범하지만 실제적인 삶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삶의 태도를 이데올로기 비판적 시각에서 그는 ‘무명의 도’라 부르며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대해 그가 쓴 『삶의 철학』 서문에 ‘무명의 도’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무명의 도’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표현이 깊은 뜻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무슨 주의 무슨 관념이라는 것이 유행하는 시대에 살며 철학을 하면서 살았지만, 아무 주의도 삶의 현실을 떠난 것은 싫다. 늘 생각하면서도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 뜻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제목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는 살아간다는 것이 이데올로기 비판이며 이것이 ’무명의 도‘이다.”
이규호는 어떤 하나의 ‘주의’나 혹은 어떤 하나의 ‘종교’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그가 말하는 ‘무명의 도’는 이미 결정되어있는 고정된 길이 아니었다. 그가 끊임없이 추구한 길은 그가 쓴 ‘철학의 길을 찾아서’에 잘 배어 나온다. 그 길은 이미 만들어진 해답이 주어진 길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길임을 말하고 있다. 그가 평생 추구한 길, 그 인생길에는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계속 배운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는 날까지 뜻있게 살아간다는 것,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향학의 의지는 바로 삶의 의지였다.(이규호, ‘철학의 길을 찾아서’, 154)”

2) 세 번의 전환점
이규호의 생애에서 그 자신이 추구한 삶의 길, 즉 ‘무명의 도’를 살펴본다. 그가 고백한 삶의 길에는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기독교로의 귀의이다. 규호가 기독교인이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었다. 그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시기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가가 있는 산청 단계로 이사하면서 규호가 단계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그 이후 규호는 늑막염을 앓아 사경을 헤매었는데, 나이 많은 교회의 할머니, 청년들, 주일학교 반사와 찬양대원들이 찾아와 불러주는 찬송가와 기도는 사경을 헤매던 규호의 가슴을 울리는 청량제로 다가왔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절대자에 의한 치유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병은 점차 회복되었고 교회 사랑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때부터 기독교인으로 귀의했으며, 이는 이규호의 삶에서 첫 번째 전환점이 되었다.
일제 말기의 시대적 상황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젊은이들이 미쳐서 날뛰던 노선들, 즉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두가 허망한 환상처럼 보여 그것엔 길이 없고 설 땅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규호는 무엇인가 거짓이 아닌 진실을, 환상이 아닌 실체를 찾고자 애써 노력했으며, 이것이 그 자신의 실존 내면세계로 관심을 돌리게 했고 기독교인으로의 삶을 전환한 계기이기도 하였다.
이규호는 이때 상황을 ‘삶의 위기와 초월’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삶의 전환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시각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었다. 앞으로만 바라보았던 눈을 위로 돌리고 밖으로만 바라보았던 눈을 안으로 돌리는 그러한 전환을 말한다. 앞으로만 바라보면서 유토피아의 환상을 그리던 눈을 돌려서 위를 바라보고 초월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 사회적인 제도와 정치적인 질서에만 쏟고 있던 관심을 자기의 실존의 내면세계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나의 삶의 위기는 이러한 삶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초월의 세계와 이를 비쳐주는 실존의 심연, 이것이 종교의 세계이다.(이규호, ‘삶의 위기와 초월’, 72)”
기독교인으로 귀의한 규호는 과학문명사회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를들면, 무게를 가진 물체가 날개도 없이 물 위를 걸어갔다든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사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초이성적인 이야기 등은 그에게 반이성적인 이야기로 들려왔다. 이 걸림돌 때문에 교회와 인연을 맺고 교회 사람들과 사귀고 그들의 사랑과 존중을 받으면서도 늘 자기 자신의 문제로 돌아올 때면 ‘내가 이 자리에 왜 있나’를 되물으면서 심한 소외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를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로 입학해 신학을 공부한 계기로 작용한다(이규호, ‘걸림돌로서의 기적, 106).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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