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지난 호에서 새해가 되면 새로움의 시작을 위해서 노력함은 좋으마 한 해의 길흉화복에 지나친 관심으로 무당과 철학관을 찾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일반인뿐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교인들의 1/4이 이런 곳을 찾아갔다는 통계도 있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예장통합 교계 신문인 기독공보(2026. 1.13)에서 “무속 아닌 하나님 주권에 의지해야”란 사설을 게재했다.(2026년 1월 13일) 주 내용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새해를 맞아 무속은 더욱 우리 사회를 파고들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도 그 영향이 크다.”는 서론과 함께 이에 대한 현실적 문제와 그 대비책을 논하였다. 본 호에서는 이에 대한 공감과 함께 이 사설에서 간과하고 있는 필자 나름의 견해를 기술하고자 한다.
2. 현실적 진단
1) 사례로 본 진단: 서론에서 언급한 사설의 내용을 요약하면“최근에 지상파나 종편 방송에서 무당, 신점, 귀신 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타로와 사주를 보며, 기독인 중에도 무속에 의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 1/4이 최근 3년간 무속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진단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서 필자가 이미 소개했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겠다.
2) 원인에 대한 진단: 위 사설에서 첫째 원인은 “기독교 신자들이 무속에 빠지는 이유는, 일반 사회의 현상과 같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불안감이 더 심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무속에 대한 기대심으로 불안감을 덜어보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둘째 원인은 “기독교인들조차 무속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젊은 기독교인들은 무속을 미신이 아니라 전통문화로 인식하며 일종의 혼합주의적인 신앙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의지하기보다는 당장의 문제에 대해 비신앙적인 방식이라 할지라도 즉각적인 해답을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필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3. 해결에 대한 사설의 대안과 필자의 견해
1) 사설에서 본 해결 방법 1: 위 사설에서는 그 대안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든지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의 견해도 동일하며 이는 우리 기독 신앙인이라면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대안이다. 반드시 실행해야 할 필수적인 과제이다.
2) 사설에서 본 해결 방법 2와 필자의 견해: 사설의 두 번째 내용은 “이러한 무속 의존은 신자들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교회의 세속화와 맞물린 구조적인 문제의 단면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필자는 50여 년의 목회에서 하나님을 향한 교회의 본질보다는 세속적이며, 다소의 무속적인 물량주의 교회 부흥과 이를 위한 구조적인 문제를 수없이 많이 겪으며 그 현장 속에 있었다. 또한 이런 현실에서 필자도 그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이었음도 고백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정작 무속의 역사와 본질과 기독교 신앙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필자가 올바른 영성에 대한 본 기고를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사설에서 본 해결 방법 3과 필자의 견해: 사설의 내용에 의하면 “한국교회 안에 퍼져 있는 기복 신앙 역시 무속과 무관하지 않다. 고난은 부정적으로, 세상의 성공과 물질적 풍요를 하나님의 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무속적인 신앙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물질과 건강은 복의 한 결과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복의 본질은 아니다. 성경의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 기술한 무속에 대한 개념과 정체성을 바로 알아야 하듯이 기복적 신앙의 본질도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본 필자가 근 20년 동안 나름의 연구 결과는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은 늘 하지만, 정작 기복신앙에 대한 본질과 우리 기독교 신앙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비판자들도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그들이 비판하는 기복신앙의 행위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4. 맺는말과 제언
이상의 내용에서 결론으로 기술하고자 하는 것은 필자로서는 “무속 아닌 하나님 주권에 의지해야”란 논설에 적극 공감하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두어 가지 덧붙이며 제언하는 바는 앞에서 기술한 대로 교회나 교인들이 무속적인 세속화나 기복적 신앙을 비판하기 전에 무속 신앙과 기복적 신앙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바로 알고, 이런 신앙이 우리 기독교 신앙과 어떤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현혹되는지를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필자는 그동안 100회가 넘도록 이런 면으로 기고를 해왔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란 말 그대로 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기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