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시인이자 수녀님인 이해인의 ‘봄 일기 - 입춘에’라는 해맑은 시(詩)다.
♢ 2월 4일은 ‘입춘’이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에드블룬이다. 어쩌면 봄은 우리의 가슴보다 앞서가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은 우리를 보고‘삶의 자세’는 이래야된다는 것을 침묵으로 가르친다. 아무리 냉혹한 현실이라 해도 계절과 마주하는 인간은 겸손해지게 마련이다.
♢ 입춘은 달력 위의 날짜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먼저 흔든다. 얼어붙은 대지 위로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해의 온도가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우리는 설명하지 않아도 ‘아, 때가 왔구나’를 안다. 겨울을 끝내 밀어내지 않아도, 봄은 스스로 문턱에 서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잠시 고개를 숙인다.
♢ 하지만 봄이 온다고 해서 자동으로 삶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풍경은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다. 분노는 쌓여 있고, 불신은 일상이 되었으며, 상처는 ‘관리 대상’일 뿐 치유되지 않는다. 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누군가 먼저 웃어주기를, 세상이 먼저 바뀌기를,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는 또 한 계절을 허비한다. 성경은 자연의 봄보다 인간의 봄을 더 절실히 묻는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사 43:19)” 문제는‘새 일’이 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준비되었는가다.
♢ 예수님께서는 계절을 기다리지 않으셨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나타난 뒤 사랑하지 않으셨고, 회개한 자만 품지 않으셨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직 겨울 같은 마음을 가진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셨다. 그것이 복음의 역설이다. 봄은 조건의 결과가 아니라 결단의 시작이다.
♢ 바울은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롬 12:2)” 환경이 바뀌어야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마음이 환경을 바꾼다는 선언이다. 결국 신앙이란 ‘내가 먼저 봄이 되는 것’이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계절 감각이다.
♢ 입춘의 문턱에 서서 우리는 다시 선택해야 한다. 또다시 세상 탓을 하며 마음의 외투를 벗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음에도 먼저 따뜻해질 것인가? 봄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용서 하나, 침묵 대신 건네는 위로 속에서 봄은 이미 시작된다.
♢ ”내가 먼저 제물이 되어야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 실천법이시다.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사랑에 조건이 따른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저버린 배신자의 자화상이다. 2026년 새봄을 맞는 우리는 모든 조건을 초월한 몸짓으로 앞장서 결단해야 한다. ”내가 먼저 당신을 껴안는 봄이 되어야지.“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반지에 새겨진 글귀라지요.
*언제나‘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