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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하소연 - 박성국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2.26 11:39 수정 2026.02.26 11:39

박성국 목사
한길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졸업(M.Div)
에스라성경대학교대학원졸업(Th.M)

박성국 목사<br>한길교회 담임<br>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졸업(M.Div)<br>에스라성경대학교대학원졸업(Th.M)
박성국 목사
한길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졸업(M.Div)
에스라성경대학교대학원졸업(Th.M)
얼마 전 동료 목사가 연락이 와서 `밥 한 번 먹자`고 한다. 예상한 대로 점심을 함께 나누면서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토로한다. 겪고 있는 고충을 말하면서 도대체 왜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문을 가지고 힘들어한다. 두어 시간 장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딱히 해결책은 찾을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나에게서 답을 듣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눈치챈 나는 듣고 공감하면서 `진짜 나쁜 사람이네`라고 추임새도 함께 넣어주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답을 듣기보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나에게 하소연하기 위해서였다. 감정이 고조되어 실컷 떠들고 하소연을 끝낸 동료 목사는 자주 보자는 부담스러운(?)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오래전 신학을 처음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은 결코 누군가를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인이 나를 찾아와서 누군가를 실컷 욕하는 경우, 귀를 막으면서 `저 친구 지금 죄짓고 있다`라고 속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픈 신학의 잣대로 고난 중에 나를 찾아온 형제를 정죄하는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던 그 친구가 나를 찾아와서 상대방을 비방하는 일은 무턱대고 죄짓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소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하소연을 찾아보면 "억울한 일, 딱한 사정 등을 간곡히 호소함"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서 하소연한다면 그는 문제 해결보다 그의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고 있던 경건한 욥은 극심한 고난을 받게 된다. 그런데 고난보다 더 힘든 일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 왔는가`라는 고난에 대한 해석이었다. 욥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기에 고난의 생채기는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이때 욥을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욥의 세 친구가 던진 말들은 욥의 가슴을 찢어놓는다. "네가 지금 알지 못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받고 있어"라고 욥을 정죄한다. 이때 욥은 "아니야. 나도 죄인이지만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엄청난 고난을 받을 만큼 죄는 짓지 않았어"라고 항변하며 논쟁을 이어간다. 욥은 친구들에게서 위로받고 싶었다. `네가 고난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야`라는 훈계를 듣는 것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함께 고민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 마디로 욥은 친구들이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길 원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비방하는 일은 잘못이지만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피곤할 때,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할 만한 사람에게 어려운 썰을 풀어내며 하소연하는 일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욥의 친구들처럼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소연을 듣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품이 넉넉한 존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누군가가 `밥 한번 먹자`고 하면 일단 카드부터 챙기고, 입술에 자크 채우고 들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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