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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동행

경남성시화 조찬기도회 설교 - 이종승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2.26 13:52 수정 2026.02.26 13:52

2월 20일 조찬기도회 설교 요약문
성경: 사도행전 16:6-10
제목: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이종승 목사
경남성시화 이사장
임마누엘교회

이종승 목사
이종승 목사
경남 CBS와 경남성시화본부(경남기총)과 함께 4월에 일본 순교지 방문 선교여행을 합니다.
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우리 (한국교회. 경남 기독교)가 왜 일본 선교를 기도하며 실천해야 되는가를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1. 본문해석 (행 16:6-10)
① 사도바울이 3차 선교를 떠나 전과 같이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께서 계속 일을 막으셨습니다.
㈀ 그 일로 인해 사도바울이 주님께 기도하였더니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유럽인)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 사도바울은 주님의 뜻임을 깨닫고 지체하지 않고 “에게해(海)를 건너 마게도냐 지역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것이 세계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② 지금 한국교회는 모든 것이 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옆나라 일본의 교회는 거의 멸절 수준입니다.
이들의 어려움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건너가서 선교의 손을 펴고 일본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도 살고 일본교회도 살수있습니다.

2. 일본의 순교지 방문을 하려면 일본 기독교 역사를 알고 가야 합니다.
① 일본은 풍신수길이 1590년에 전국을 통일시켰습니다.
㈀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조선침략)을 일으켰습니다.
㈁ 1597년 정유대란을 일으켰다가 1598년에 풍신수길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② 풍신수길이 전국을 통일하기 전 1543년에 포루투칼 상인들에 의해 신식무기 ”조총“이 규슈지방에 들어왔는데 짧은 기간에 일본군이 무장하는 신무기가 되었습니다.
㈀ 포르투칼 상인들과 함께 카톨릭(예수회) 선교사가 일본에 들어와 포교를 하므로 일본은 1549년에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참고 : 한국은 1784년 이승훈이 들여 왔으니 일본이 한국보다 235년 앞섰습니다.
㈂ 일본에 포루투칼 상인과 카톨릭 선교사가 정착에 처음 활동한 곳이 남쪽 규슈지방이고 나가사끼는 그 중심이였습니다.
③ 풍신수길은 1587년(전국통일 3년 전) 예수회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기독교의 박해의 시작이였습니다.
㈀ 임진왜란이 정유대란으로 격화될 때(1597년) 풍신수길의 명령으로 예수회 선교사 7명 신도 19명이
오사카에서 나가사끼까지 끌려와서 처형당했습니다.
*참고: 오사카에서 나카사끼까지의 거리는 약 750Km입니다.
㈁ 풍신수길이 죽고 (1598년) 권력싸움에서 덕천가강이 집권하자 1614년 일본 전역에 기독교 금교령을 내리고 개종하지 않는 사람은 온갖 고문을 하고 처형을 하였는데 이 기간이 1873년까지 260여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참고: 일본개혁의 상징 명치유신(메이지 유신) 1868년에 발표됨
일본에 기독교 박해가 끝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1859년에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와 일본에 개혁 개방을 이끌어내는 명치유신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4. 일본이 카톨릭을 박해하게된 결정적 원인
① 1543년 일본에 들어온 카톨릭 예수회 선교사들의 공격적 전도로 개종을 시키며 포교를 하였습니다.
㈀ 이때 일본의 지도층인 영주 장군(쇼군)사무라이 들이 많이 포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포로투칼 스페인 같은 선진국과 연결되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고 정.교 유착을 한 것입니다.
* 이때 오사카를 중심으로 카톨릭 인구가 20% 정도 되었습니다.
② 1590년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시키고 보니 카톨릭세력이 정권통치에 막대한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이미 통일전 1587년에 예수회 선교사를 추방했던 풍신수길은 1597년에 나가사끼에서 26명의 카톨릭 신자를 처형해 본을 보이고 개종하지 않으면 혹독한 핍박과 고문으로 처형을 하였습니다.
③ 그 후 덕천가강이 일본의 권력을 장악한 후 대적 관계였던 ”소서행장“등 기득권세력(영주. 장군. 사무라이)을 제거 할겸 1614년에 카톨릭 금교령을 국법으로 선포하고 잔인할 정도로 전국에 카톨릭 교회를 박살 내고 신도들은 고문 핍박 처형을 하였습니다.
*참고: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소서행장은 카톨릭 신도였고 그때 종군신부를 대동해 조선정벌에 함께 했는데 그때 종군신부가 ”조선 견문록“을 쓰고 포로 아이들을 교황청에 보냈습니다.
*참고: 세계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성인 (聖人)
한국 카톨릭은 103명. 일본 카톨릭 42명 한국은 1784년 이승훈에 의해 정조 때 카톨릭이 들어와 고종 초기까지 80년 동안 5대 박해를 받았는데 일본보다 순교자가 더 많고 성인 (聖人)도 많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받아드린 가치관의 차이 때문입니다.

5. 일본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의 차이
① 일본은 1859년에 미국 선교사와 들어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본에 온 선교사들은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일본교회의 신앙은 국민성과 토속신앙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유일신앙이 없었습니다.
*참고: 일본은 토속종교. 불교. 혼합종교가 84% 기독교는 카톨릭포함 2%도 안됨 (지금 개신교는 0.25% 정도)
② 일본 기독교가 소멸하게 된 원인
㈀ 국가 제도 (일본은 철저한 정교 분리) 내용적으로 철저한 종교배제입니다.
기독교를 종교자유로 허락했지만 종교기념일은 공휴일로 안지킵니다.
일본은 성탄절. 석가탄일이 없습니다.
㈁ 일본인의 기독교에 대한 국민 인식
토속종교(불교포함)는 우파. 기독교는 좌파
㈂ 일본의 국민성
③ 일본인의 사회적 정서 (집단적 정서)
㈀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일본은 조직사회) : 이지매 당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안합니다. 이들은 전도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나 간섭으로 여깁니다.
㈂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전도했다가 거절당하면 큰 모욕으로 느낍니다.
④ 일본인의 종교관 (다원주의)
출생하면 신사에 가서 제사하며 축하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화려하게 결혼하고
장례식은 절(사찰)에 가서 모십니다.
⑤ 일본인의 특성 (집단사회. 조직사회)
개인(나)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집단 조직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개인적 회개. 구원. 천국. 영생의 개념이 없다)
*일본은 이런 것에 국민이 길들여 있어서 기독교 신앙생활도 소극적이며 현실을 탈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본 기독교는 점점 소멸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이러한 일본 순교지에 경남 성시화 (경남기총)가 선교여행을 갑니다.
1) 이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입니다.
① 일본 선교는 경남 기독교가 먼저해야 합니다.
일제 침략 40년 동안 한국의 종교 중 기독교가 가장 핍박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경남 기독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당했습니까?
㈀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일제에 가장 핍박을 받은 경남 기독교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일본을 선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일본에 보내신 주님의 뜻입니다.
② 그러므로 사명을 가지고 믿음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밟는 곳마다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수 1:3)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돌고 외친 것 같이 금 번 일본 순교지 방문
선교여행이 이와같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부터 일본을 품에 안고 뜨겁게 기도로 준비하고 될 수 있는대로 많은 목사. 장로 성도들이 동참하세요.
주님께서 놀라우신 역사로 일본을 복음으로 살리고 대한민국 교회와 경남 기독교를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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