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다음 해 1946년 우리나라에 왔다. 부모님의 고향인 경남 함안에서 정착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농촌에서 6.25사변을 맞게 되었다. 엄청난 혼란과 격변기를 지내면서 동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황폐한 환경 속에 학교가 불타고 수업 시간에는 가마니를 깔고 공부했고 먹을 것 조차 없던 배고픔과 고통의 나날들이었다. 오직 삶의 흔적은 아픔 상처뿐이다. 모두 먹고사는 연명하는 문제가 최우선이며 모든 사람이 농사에 의존하고 노동이 삶의 원천이 되었다.
봄이 되면 보릿고개라 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밭이나 들에 나가 먹을 찾곤 했다. 문화 시절이 없기에 놀이 기구는 자연을 이용한 손수 만들어서 사용했다. 일년에 설 추석 명절에만 새 신발, 새 옷은 그날밖에 구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이 기다려졌다. 나는 어린 마음에 매일 명절날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가난 속에 교육의 입문은 학교 들어가기 전에 6세 때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든 천자문 책을 대청마루에서 배운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친께서 농촌에 살면 자식들 공부도 못 시키겠다고 생각하고 부산으로 이사했다. 부친께서는 부산에서 미군 부대에 일하셨고 노점상을 하며 생을 영위하셨다. 얼마후 대구로 이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구로 이사했다. 대구는 배움의 굶주림과 눈물의 빵을 먹으며 공부했던 시절이다. ‘가난이 싸움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숱한 고민과 배고픔의 시절이었다.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대구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져야 하는데 은행보다 교직을 택했다. 보수는 적지만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65세 교직정년이고 평균수명이 60세 정도였다. 20대 초반에 청도 오지에 발령을 받아 교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집에 자주 갈 수 없었다. 어느 주일날 동료 교사가 내게 다가와 조 선생 오늘 집에도 못가는데 내 따라 교회나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 했지만 나중에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분은 모든 면에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본받을 만한 모범교사였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누군가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평생에 세 사람 잊을 수 없다. 첫째 낳아주신 신두선 어머님, 두 번째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신 최해영 선생님, 마지막 한 분은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기도하며 동행해 주신 조금자 목사님입니다.
늦게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 활동은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 내 인생에 전반기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후반기에는 교회에서 목회 자로 노년기에는 밀양노인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지금은 하늘소망교회을 만들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이제 내 인생의 꿈은 4대 한자리 앉아 예배드리는 날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처음 교회 가는 날 성경책을 빼앗겨 연탄불에 놓이게 되었고 집안 어른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할머니께서 불공드려 귀한 손자를 얻었는데 교회 간다고 하니 그 핍박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명절 때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야 했다. 어머님은 가난 속에서도 일년에 다섯 번이나 제사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제삿날 돈은 없고 걱정하는 어머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님의 걱정과 눈물을 닦아드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세상은 지금과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동생 중 한 명은 형님! 우리 가정이 어떤 가정입니까 무슨 이런 짓을 합니까 그렇게 핍박하던 동생은 지금은 원로 장로가 되었고 늘 나를 볼 때마다 “형님은 우리 가정에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다. 그때 부모님은 비록 교회는 나가지는 아니했지만 어질고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 삶이 내 인생에 그림자가 되었다. 부모님의 학구열과 부지런함 성실함이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삶이 작은 씨앗처럼 처음에는 작아 보여도 우람한 나무가 되고 나중에는 큰 그늘을 만들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며 훗날 역사적 존재가 된다는 것을 믿고 있다. 시간의 축은 어젠가는 내가 존재하고 내가 남긴 것은 남이 평가한다.
지금은 기도를 최우선으로 하고 노인회에 봉사하며 시도 쓰고.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시민을 위해 ‘마음의 창’ 칼럼리스트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