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기독교와 기복신앙, 본질적인 면으로 볼 때는 전혀 상반된 주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기원과 실제적인 현실로 볼 때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구분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면도 있다. 이에 대해서 지난 호에서는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론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를 논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의 예고대로 이러한 기복신앙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부분적 수용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부분적 수용론의 입장
지난해에 많은 분량으로 논한 기복신앙과 관련된 주제에서 본 호와 비슷한 내용으로 논한 일이 있지만, 다시 요약해서 기술한다면, 현재의 보편적 신학과 교계의 입장에서는 기복신앙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판적이다. 하지만 일부의 교단과 관계자들은 잘못된 기복신앙은 배격하지만, 무분별한 비판은 잘못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수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부분적 수용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서 요약하여 기술함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첫째로, 기복신앙의 기원과 사전적 단어의 의미를 너무 일방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면,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기도와 신앙의 행위를 무조건 기복신앙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복에 대한 기도나 9가지 은사(고전 13:8~10)에 대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기복적인 신앙으로 취급하는 경향들 이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견해이다.
둘째로, 기복신앙은 무조건 비판할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일보에 게제 된 이달훈 목사(대전 동행 한빛교회)의 견해를 요약해서 기술함을 전재로 한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축도엔 두 가지가 있다. 고린도후서 13장과 민수기 6장의 축도이다. 보통 민수기의 경우를 대제사장 아론의 축도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또한 구약은 온통 복에 관한 내용이며, 특히 민수기와 신명기에는 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이 내용은 기복신앙이다. 이런 기복주의적 신앙이 문제가 된다면 근본적인 신앙마저 부정당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했으며,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복을 재해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받기를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교회의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 너무 일방적이며 편협한 시각이란 것이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치병과 현세적인 일의 해결에 대해서 기도하면 무조건 무속신앙의 저속한 주술적, 기복적 행위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현세적인 복에 대한 기도도 분명히 있고, 예수님의 3대 사역 중의 하나도 치유와 현실적 고통을 해결해 주신 일들도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무조건 현세적 해결의 기도를 저급한 개념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넷째, 기독교의 근본 진리인 구원은 영혼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로 볼 때 영과 마음과 육신의 고통과 속박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한 육신의 복에 대한 약속도 분명하게 선언되었다는
점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복 주고 번성케 하리라’란 약속의 말씀을 비롯한 많은 말씀이 단순히 영의 복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섯째, 기복신앙을 비판하는 자들도 실제 자신에게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거의 모두 현실적인 기복신앙 형태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본인이나 가족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의 치유를 위한 기도, 자녀들의 입시나 취업 시험의 경우, 사업의 성공과 직장의 승진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비판자들도 예외 없이 기본적인 간구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3. 결론과 제언
지금까지로 볼 때 기복신앙에 대한 부분적인 수용론자들도 성경이 말하는 복의 근본은 영혼 구원에 있고, 자신의 개인적이며 부귀영화의 현세적인 복보다는 영적이며, 범세계적이며, 하나님의 공의가 진정한 복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은 현세적이며 개인적인 복도 분명히 있으며,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이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주변에는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지인들이 부분적인 수용자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후자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다. 그 이유는 앞선 기고들에서도 많이 언급했지만, 잘못된 기복신앙은 반드시 배격하고 우리의 신앙에서 철저히 분리해야 되지만, 기복신앙의 유래와 정체성을 바로 알게 된다면, 무조건 배격할 주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즉 단순하게 무엇이 바른 하나님의 복이고 무엇이 잘못된 기복신앙이라고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제언하는 바는 부디 바로 알고 바로 분별하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계속 논하면서 우리의 올바른 영성과 신앙을 추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