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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금빛등대 - 이윤민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3.10 15:22 수정 2026.03.10 15:22

<‘새롭게’라는 뜻을 헤아리는 시간 > 2026. 3. 11. 수.
이윤민 목사 금빛교회

이윤민 목사
이윤민 목사
♢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중략 //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중략 //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나태주 시인의‘3월’이다.

♢ 어느새 3월이 왔다. 달력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번째 달력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3월은 1년의 세 번째 달이지만 왠지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강한 달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새해는 1월에 오지만, 새로움은 3월에 온다”고 말한다.

♢ 우리는 쉽게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새롭게’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히 날짜가 바뀌는 것일까, 환경이 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 안의 어떤 근본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3월의 문턱에서 우리는 이 단어의 무게를 잠시 멈추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 성경은 ‘새로움’을 단순한 외적 변화로 보지 않는다. 선지자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여기서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내는 창조적 개입이다. 인간의 반복된 실패와 좌절의 역사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질서를 여신다.

♢ 신약에 이르면 사도 바울은 더욱 분명히 선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는 수선(修繕)이 아니라 창조(創造)다. 낡은 자아 위에 덧칠하는 개선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바꾸는 은혜다. 성경이 말하는 ‘새롭게’는 상황의 변동이 아니라 존재의 변혁이다.

♢ 그렇다면 ‘새롭게’는 어떻게 가능한가. 성경은 그 해답을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사람의 종결을 뜻한다. 부활은 새 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옛 자아를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존재다. 회개와 순종, 말씀과 기도로 이어지는 지속적 갱신의 과정이다.

♢ 세상이 말하는 새로움은 속도와 자극을 앞세운다.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더 파격적으로.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새로움은 방향의 문제다. 어디를 향해 사는가, 누구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가의 문제다. 방향이 바뀌면 인생의 궤적이 달라진다. 그것이 참된 새로움이다.

♢ 3월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새롭게 하려 하는가. 다이어리의 첫 장을 채우는 계획인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의 동기와 욕망인가. ‘새롭게’라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손길을 삶에 허락하겠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은혜 안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결심이다.

♢ 3월의 하늘 아래 서서,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주여, 환경만 바뀌는 새봄이 아니라 존재가 새로워지는 은혜를 주소서. 나부터 새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주변에 작은 봄이 번지게 하소서. 이 작은 몸짓이 계절의 변화를 초월하는 은혜의 선언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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