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동길 교수가 그리워하며 따르고자 했던 강성갑 목사
김동길 교수가 쓴 『어떤 사람이기에』(범우문고 68)란 수필집이 있다. 이 수필집의 ‘그리운 사람 강성갑’이란 소재목의 글에는 강성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내에 한얼중학교라는 학교가 있다. 그 건물이나 환경은 심히 초라하지만, 이 학교 설립의 위대한 정신은 한반도 전체를 덮고도 남음이 있다.’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김동길 교수, 1980년대 정치평론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로 널리 알려진 연세대학교 사학과 김동길 교수가 어떤 연유로 강성갑 목사가 설립 운영한 한얼중학교 설립정신은 한반도 전체를 덮고도 남음이 있다면서 강성갑을 그리워할까?
김동길 교수의 또 다른 저작 『백년의 사람들; 김동길인물한국현대사』(2020년 나남출판사)에서도 강성갑 목사를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은 김동길 교수가 매주 토요일 조선일보에 연재한 54회 분(2017.11.18-2018.12.22)과 자신의 블로그 ‘석양에 홀로서서’에 연재한 46회 분(2019.1.5-2019.11.16)을 묶어 그가 소천하기 2년 전인 2022년 10월 5일 출간한 책이다. 김동길 교수는 이 책에서 이 땅에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기억에 남는 사람 100명을 그가 느낀바 또는 받은 인상을, 그들의 사람됨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100명 중에 강성갑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 편집순서는 김동길 교수가 만나고 싶은 사람 100명을 나이순으로 이승만부터 조만식, 조소앙, 최남선, 원한경, 김성수, 이광수, 정인보, 조병욱, 신익희, 최현배, 백낙준, 이기붕, 김활란, 박태준 ... 으로 이어지는데 31번째로 「애국자이며 순교자인 그를 따르고자 했던 나... 6·25때 총살의 비극」이란 소제목으로 강성갑 목사를 소개하고 있다.
김동길 교수가 그리워하며 따르고자 했던 강성갑 목사, 그는 1912년생으로 경남 의령출신이다. 1950년 8월 2일 한국전쟁 중 수산교 다리 밑에서 공산주의자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소위 말하는 우익의 총탄에 의해 순교한 분이다. 김동길 교수는 강성갑 목사보다 16살 연하인 1928년생으로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다. 그는 공산주의가 싫어 평양을 탈출 월남해 평생을 자유가 아닌 것, 민주주의가 아닌 것과 맞서 싸우며 살아온 철학자이자 교수이며, 그리고 현실정치에 참여한 분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비교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김동길 교수, 그가 그리워하며 따르고자 했던 강성갑 목사, 강 목사의 어떠한 삶과 정신을 그리워하며 따르고자 했을까. 이에 김동길 교수의 삶과 강성갑 목사의 정신을 함께 살펴본다.
김동길 교수는 해방된 조국에서 공산주의 통치가 싫어 평양을 탈출해 월남한 후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술활동과 함께 사회운동과 현실정치에도 깊이 관여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4년 군부독재시절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글쓰기와 유신헌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이란 형벌을 받고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옥했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도 연루되어 대학교수직을 두 차례나 해직되기도 한 분이다. 그 이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하며 정치판에 뛰어들어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으며,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그 이듬해 김종필 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한 뒤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여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삶의 여정에 대해 그는 자신의 삶과 철학은 자유가 아닌 것, 민주주의가 아닌 것과 평생 싸운 삶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